저녁쌀을 씻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느 근사한 노신사가 저녁을 사기로 했으니 무조건 얼른 나오라는 사촌형님의 전화였다. 서둘러 저녁 준비를 해놓고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로 마을 어귀로 나가니 나까지 모두 일곱 명이 모였다.
 밥을 사는 사람이 누군지 물어도 정작 불러낸 사람은 짓궂게 웃기만 할 뿐, 누가 산들 대수랴. 언제부턴가 모두 제 사는 일에 바빠지면서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들어진 동네 친구들이었고 한 동네로 시집와 이십여 년 가까이 정을 나눈 사이들이니 모처럼 한가한 주말 오후 불러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식당 안에서 기다리는 노신사는 뜻밖에도 나의 작은아버님이셨다. 얼마 전 수능시험을 본 작은 집 조카가 서울의 유수한 대학에 합격하여 그간의 며느리의 수고를 치하하고 싶다며 우리를 부르게 하신 거였다.
 작은 집 형님과 모두 비슷한 시기에 한 마을로 시집와 조부모,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아이를 낳아 키우고 살림을 일구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이십여 년. 백수(白壽) 가까이 사셨던 나의 시조부님, 망령이 나셨던 B의 시조모님, 이태를 자리보전하고 누워 계셨던 M의 시모님, 그리고 내 시아버님이 졸지 간에 황망히 가시고 이제 마을의 기둥으로 계시는 어른은 몇 분 되지 않는다.
 갓 시집 왔을 때 한창 장년층으로 활동을 하시던 시어른들은 이제 노인이 되셨고 새댁으로 불리던 우리들의 머리엔 희끗희끗 건방진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하여 어른들 앞에 민망하기 짝이 없다.
 손자의 대학합격을 핑계로 마을 안의 며느리들을 불러 음식상을 마주하고 작은 아버님은 연신 흐뭇한 웃음과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다. 일일이 술잔을 채워주시는 작은아버님의 미소 속에 새댁에서 불혹을 넘긴 짧지 않은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어른들 모시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 농촌에 사는 일들이 힘에 부쳐 눈물짓던 시간들, 삶의 지혜가 부족해 방황하던 시간들, 그 안에서 사금파리 같은 행복 한 조각씩을 건져내고 웃음 짓던 시간들이 돌이켜보면 모두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식당에서 나와 자네들끼리 노래방에 가라며 지갑을 열어 지폐 몇 장을 꺼내주시고 일곱 명의 며느리들의 배웅을 받으며 작은아버님은 택시에 오르셨다. 평소 어렵기만 하던 어른의 노안에서 흘러 넘치는 애틋한 미소 속에 지나간 세월의 궤적들이 달려나와 눈시울을 적신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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