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신용한 서원대 석좌교수·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신용한 서원대 석좌교수 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최근 국정감사에서 학교 업무용 소프트웨어 구매를 놓고 공개 입찰 경쟁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체결한 사유를 추궁하면서 겉도는 질문과 모호한 답변으로 온 국민의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 장면이 있었다. 그야말로 우문우답(愚問愚答)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교문위 국감에서 있었던 "새파랗게 젊은 것들에 이런 수모를…" 발언은 거의 기행수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국토교통위 국감에서는 항공기 과속을 단속해야 한다는 근거가 모호한 주장이 제기돼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미디어 전성시대 답게 이런 코미디 같은 현장은 주요 포털 검색어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국감을 '언어의 향연장'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많은 분석가들이 "여소야대 지형에 적응하지 못해서 유독 이번 국감에 수준미달의 질의응답이 많다"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현상을 다시 해석해 봐야만 할 시점이다.

국가의 정책이나 지자체의 목표, 기업의 성과평가에 있어 일반인들은 구체적이고 정형화된 모습으로 명확히 표현해주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현실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적 이슈 등에 있어서 추상적이고 비정형화된 모습으로 모호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동양철학이나 선문답처럼 언어의 추상성을 잘 활용하여 실증적 검증이 어려운 모호한 표현을 하거나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도록 여러 의미를 내포한 것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본다.

종편 등 많은 언론을 대하다 보면 이시대 유명 논객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한쪽 이데올로기의 대변인인양 일방적 주장을 할 뿐 객관화된 토론이나 실증적 논리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미디어시대에 최적화된 전달자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보니 보고나면 공허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체적 진실이나 구체적인 솔루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증적 컨텐츠와 솔루션을 갖고 말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끊임없는 공부와 실력으로 무장하지 않고 실행하기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리더들이 첨예한 대립 사안에 대해서는 추상성과 모호성으로 겉을 잘 포장하여 더더욱 두루뭉술하게 구호성으로만 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이데거의 철학에 사회, 역사적 차원을 더해주는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실존적, 존재론적 지평을 도입한 카렐 코지크의 '구체성의 변증법'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가 정책이나 지자체의 행정, 기업의 경영에 대해서 비판과 잘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반드시 '구체성'이 있어야하고 합리적인 대안 즉 '솔루션'을 제시하여야 한다.

특히 정치, 행정적으로 첨예한 사안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함에 있어 우선은 현실에 접근해 근본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종래의 학문이나 이론이 어떻게 답해 왔는지와 과거에 조치한 선례를 분석한 다음, 이런 문제가 현실적으로 함축하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것들은 어떠한 사회·경제적 현실에 뿌리박고 있는가를 밝힌 후 종국적으로는 잠정적인 해법과 답을 제시하는 게 지극히 합리적인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위에서 본 국감뿐만 아니라 지역 현안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MRO 건이나 국제무예마스터십, 각종 지역축제에 대한 비판과 지적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솔루션 제시는커녕 무엇을 왜 문제삼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 출발점도 흐트러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언어의 향연'의 결과는 단체장등 누구의 잘잘못이냐를 따지는 것에 급급한 과거지향적인 성과분석과 상벌에 집착하기 십상이다. 이제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지적질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솔루션'을 함께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비판과 성과관리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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