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홍준기 제천 청암학교장

홍준기 제천 청암학교장

'울고 넘는 박달재' 제천은 일기예보에서 최저기온이 소개될 정도로 춥지만, 높은 산과 맑은 물 그리고 계곡이 깊어 풍광이 아주 좋은 고을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가 될 수 있다는, 시샘인지 위로인지 알기 힘든 말을 들으며 이 좋은 곳에서 지낸 지 1년이 넘었다. 그러나 말이 좋아 그렇지 나이 들어 홀로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멀쩡하게 가방에 들어 있는 차키를 찾아서, 그리고는 또 휴대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허둥대는 출근 모습이 가관이다. 어쩌다 찾아와 이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한심스러움과 걱정으로, 말은 안 해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스스로도 건망증이 심해졌나, 혹시 치매가 시작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

 돌아가시기 전 약간의 치매증상을 보였던 어머니였다. 집에서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마을에서 길을 잃어, 그나마 아파트 이름을 기억한 덕에 찾은 적도 있다. 어쩌다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려고 야외에 나가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들을 가리키며 "저게 다 우리 산"이라고 주장하셨다. 이런 어머니를 동생에게 맡겨 놓고 일본으로 2년이 넘는 장기연수를 갔던 것을 지금서 후회해 본들 부질없는 일이다. 어쩌면 매일 보이던 아들이 갑자기 안 보이는 충격으로 어머님이 일찍 가신 게 아닌가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이것이 바로 기억력 감퇴나 치매란 말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중년 넘어 누구나 겪는 건망증 증세는 가지가지다. 문은 잠갔는지, 전기, 가스, 에어컨, 휴대폰, 차키….

 정말로 문명이 인간을 괴롭히는 세상이다. 건망증일까 치매 증상일까를 두고 우스갯소리도 많다.

 볼 일 보고 지퍼를 올리지 않으면 건망증, 지퍼를 안 내리고 볼 일을 보면 치매 / 술 먹고 귀가하여 아내가 예뻐 보이면 건망증, 날마다 예뻐 보이면 치매? 세탁기에 넣어 둔 세탁 안 된 빨래를 그냥 꺼내면 건망증, 그대로 널면 치매 / 갑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 안 나면 건망증, 집에 전화하고서는 "당신 누구냐?"고 물으면 치매.

 물론 웃자고 만든 이야기이겠지만 내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웃고만 있을 수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망증이 치매의 초기 또는 전조 증상일 수는 있지만 건망증이 모두 치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조기 치매는 뇌 질환 때문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노화과정에서 오는 기억력 감퇴와는 다르다. 조기 치매의 원인은 혈관질환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우울증, 흡연과 지나친 음주, 유전 등을 꼽는다. '지나친'에 밑줄을 친 이유는 '지나치지 않으면 괜찮겠지' 하는 자기 위안 때문이다. 이런 꼼수를 부려보지만 조기 치매의 결정적 원인이 음주라니 더욱 걱정이다.

 치매 예방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지한' 충고는 기가 막힌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로부터 듣는 '값비싼' 말과 똑같다. "흡연과 음주를 피하고, 비만이 되지 않도록 덜 먹고, 운동 많이 하세요!" 늘 이런 충고와 처방을 들으면서도 금방 잊는다.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은 나 같은 사람들, '우리' 모두 치매 예비반이 아닌가 싶다. 이런 '우리' 말고도 진짜 치매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또 있다.

 국민과 주민을 '위(爲)해서' 일하겠다던 사람들이, 국민과 주민 '위(上)에서' 일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 역시 치매임이 분명하다. 여당이 야당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 역지사지도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나랏일을 하니 수레바퀴가 헛돌 때가 많다.

 일선 학교 지원을 강화한다는 뜻에서 교육청이라는 이름도 교육지원청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만약, 정말 만약이다. 지원은 커녕 아직도 80년대식 군림행정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도 역시 과거는 잊고 미래는 예측하지 못하면서 현재는 치매증세 속에서 살고 있는 가짜 머슴(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어탁수(一魚濁水), 바로 그게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그 미꾸라지 한 마리가 자신이 한 일을 모르면서 산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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