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아무리 국가가 발행한 거지만 나더러 50년짜리 채권을 사라고? 내년도 모르는데 어떻게 50년 뒤를 알아? 아마 국고채 50년물 투자를 권유 받은 고객이 던질만한 질문이다. 그렇다. 50년 만기인 채권이 발행되고 유통된다는 것은 상호간에 엄청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50년이라고 하면 웬만한 인간의 수명과 같다. 발행물을 샀다면 거의 평생을 보유해야 만기 원리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0월 11일 국고채 50년물이 발행됐다. 자본시장에서는 상징적인 일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 잘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선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고 선진국에서 마이너스 금리마저 횡횡하자 수요자들도 저금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또,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다. 50년 동안 돈을 묵혀놓아도 괜찮다는 투자자들의 양보가 내재돼 있다.

물론 초기 시장인지라 아쉬움도 있다. 규모 면에서나 다양한 수요자 측면에서 아직은 미미하다. 그러나 시장이 개설되고 어떻게 발전할 지는 두고 봐야 한다. 위협 요인도 많다. 다양한 투자 수단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같은 채권 중에서 30년물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 거기다 요즘은 해외채권까지 가세하고 있다.

2012년 최초로 발행된 국고채 30년물이 생각난다. 모두들 반신반의하며 발행금리 3% 초반대로 발행됐다. 저금리 얘기가 한참 나오던 때라 이 채권을 사면 돈을 벌 것이라고 추천을 하여 개인고객들도 많이 샀다. 발행하자 마자 며칠 가격이 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금리가 올라가며 가격이 뚝 떨어졌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비례한다.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질타가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3%대 초반으로 발행한 채권이 지금 1%대 중반으로 떨어지며 투자자들은 큰 수익을 얻었다. 덕분에 시장은 안정되고 50년물 발행에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할 수 있다.

국고채 50년물 발행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투자 수단의 관점에서 짚어보겠다. 물론 이 채권을 투자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전체적인 채권투자에 대한 관점이다. 금융기관을 오래 다니며 아쉬운 점 중에 하나가 좀 더 젊었을 때 채권에 대해 알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것이다. 흔히 젊었을 때는 변동성이 심한 주식에 광분한다. 심지어 이것도 모자라 파생상품으로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쉬운가. 성공할 확률로 보면 무척이나 어렵다.

그렇지만 채권투자는 안정적인 종목을 선택하면 이자가 꼬박꼬박 들어오고 만기까지 보유하면 금리 변동과도 무관하다. 더군다나 금리가 하락 추세에 있을 때는 큰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경제의 큰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부자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었던 것 중의 하나가 채권이다. 채권은 큰 돈으로만 투자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요즘은 대부분의 채권이 상장되어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고 매매물량도 많은 편이다. 물론 지금은 금리가 얼마 되지 않아 성에 차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채권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또 언젠가는 금리가 좋아질 때가 있고, 투자의 호기가 있을 것이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채권에 관심을 가지고 소액이라도 직접 투자하며 생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튼 장기물 발행은 한 나라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전세계를 통틀어 장기물이 발행된 나라는 많지 않다. 30년물도 불과 이십여 개 국가에 불과하다. 금번 채권 발행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개인적으로 향후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50년 이상 무궁히 발전하길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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