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밭은 기침이 묻어나오던 당간지주 산자락에 어머님 혼자 옛집을 지키며 살아 오신지 7년째.
 도회생활은 절대로 하실 수 없다는 고집때문에 모시지도 못하고 우리 형제들은 꼭 죄인 된 심정으로 주말이면 고향집을 찾는다.
 가까이 누님 한 분이 계셔 알뜰히 조석으로 보살펴드리지만 이렇게 추운 계절이나 농번기에는 빚진 마음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든을 넘기신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는 천여 평이나 되는 밭을 혼자 경작하셨다.
 두태(豆太)는 물론이고 들깨며 고구마까지 밭 가득히 심으시고 넉넉한 마음으로 수확하신 뒤 당신 생신이나 명절때면 으레 자식들에게 농산물을 골고루 나눠주시는 걸 유일한 낙으로 삼고 계신다.
 어디 그뿐이랴. 김장배추,청국장까지 챙겨주시며 봄이면 건강에 좋다는 돌미나리를 한 보따리씩 캐어 이고 오시기 일쑤이다. 또 여름이면 집 울타리와 밭둑에다 찰옥수수를 촘촘히 심어놓고 수염이 마를 때까지 손주녀석들 오기만을 기다리신다. 나 역시 자식을 낳아 기르지만 『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떋뺨?옛말이 생생히 실감된다.
 언젠가 한여름 집에 들렀을 때 뙤약볕 속에 밭을 오르내리시는 시간을 아끼시느라 간단한 요깃거리만 싸가지고 장마에 패인 좁은 농로를 힘겹게 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주체할 수 없는 가슴을 여민적이 있었다.
 아무리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 하지만 그 연세에 젊은이도 기피하는 농사일을 해만 뜨면 나서 종일토록 땀을 흘리실까. 누가 농사를 일러 「 농자천하지대본」떲繭?했던가. 평생을 두고 반복하신 그 뼈를 깎는 질곡의 세월 앞에 이젠 마르고 주름진 손을 놓을 때도 되지않으셨는지. 그래 이게 천직이란 것일 게다.
 군 제대를 마치고 한동안 일자리가 없어 농사일을 거들 때 내가 애를 삭이지 못해 힘들어 하면 「그래 뼈에 박이지 않은 일이 어디 네게 수월하겠냐. 쉬엄쉬엄 하거라떋?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무슨 일이거나 외곬로 한 우물을 파다보면 이력이 붙고 자신만이 도퉈갈 수 있는 안목과 지혜가 열릴 것이리라.
 내 자신 그리 많이 남지않은 공직의 끄트매기에 화들짝 밀려와 있구나 생각하면 무엇이든지 진솔한 마음으로 땀흘려 열심히 일해오신 어머님의 모습을 배움해야지 하는 늦깎이 철이든다. 모정의 세월! 오늘도 얼지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조바심나 안달할 것 없이 댓잎 서걱이는 고향집 사랑방에서 오랫만에 새끼라도 꼬아 볼까나. / 충일중학교 행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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