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홍양희 충북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홍양희 충북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TV 사극에 많이 등장하여 현대인에게도 친숙한 마패(馬牌)는 관원이 나라일로 지방에 갈 때 역마를 사용할 수 있는 증표로 내주던 패이다. 마패를 이용해 주요 도로에 30리마다 설치돼 있는 역에서 말을 빌려 탈 수 있었으며, 교통의 중심지이나 한적한 도로변에 원이라는 숙박기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역마제도를 이용해 물자의 수송과 통신, 여행이 보다 신속하고 편리해졌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마패를 도둑질해 양식과 바꾸어 먹는 폐단과 왕조가 바뀌면 뒷면의 연호를 바꾸어야 했기 때문에 자주 개조해야 하는 문제점이 심각했다.

정책결정을 주도하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거나 또는 이익을 침해할 경우, 대안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고 비밀리에 채택 또는 기각하는 비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이 있다. KTX 세종역 타당성조사 용역 추진은 이와 같은 시각으로 인식되어진다 해도 무리가 아닐 듯 하며, 상당한 저의가 마치 조선시대 마패의 문제점과 흡사하다.

2012년 7월 1일 원안대로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게 됐다. 출범당시 연기군 인구는 8만여 명이었으나, 2016년 현재 21만 명이 넘게 거주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세종시가 원안대로 출범하고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행정수도 이전 공약부터 행정중심복합도시 출범까지, 충청권의 상생 발전과 협력이라는 대의 아래 정치권, 지자체, 주민들이 단결하여 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청주공항 활성화 등 현안을 둘러싸고 충청권의 공조가 흔들림 없이 이어지고 있던 차에 소리도 소문도 없이 진행하는 세종역 추진이 공조체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통계청의 '시·도간 인구 이동자료'에 따르면 2012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4년 8개월 간 세종시 전입자 수는 13만 4734명이다. 이 중 수도권에서의 전입자는 30.6%를 차지한데 비해, 같은 충청권에서의 전입자가 59.6%에 달한다. 중앙부처 공무원 가족의 이주가 예상보다 미진해 세종시장이 주장하는 2030년까지 인구 80만명 달성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는 수도권 집중과 불균형 성장 해소라는 행정수도 이전의 당초 목적에 걸맞게 공무원과 그 가족 그리고 수도권 주민들의 이주와 정착을 촉진시킬 정책을 우선적으로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종시 주민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가속 및 정지거리와 정차시간 등의 기술적 문제가 드러남에도 유력 정치인과 시장 그리고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관철시키고자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합리하게 책정된 택시요금체계의 현실화는 물론, 오송역을 연결하는 BRT버스 등 대중교통체계 개선으로 오송역을 포함한 대전역, 공주역과의 접근성을 보다 편리하게 해야 한다. 대중교통 노선을 다양화하고 편리성을 확보하는 방안은 KTX 세종역을 신설하는 비용 범위 내에서도 충분하다. 세종시뿐만 아니라 대전시와 청주시, 충남과 충북이 함께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이 백지화에 처할 위기에 충청권은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냈다.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달아난 양을 찾지 못하고 잃었다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이 되는 위기를 벗어나고자 충청권 전체의 시각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 그 염원과 열정을 한데 모았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이해와 설득 없이 지자체간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해당사자 간의 심도 깊은 논의와 설득과정을 거쳐 본 사안을 진행해 나가야 하나 균형발전과 충청권 상생이라는 대전제를 상기해야만 할 것이다. 균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충청권의 공조가 세종시 출범을 위해 단결했던 그때보다 공고히 다져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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