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29일 오후 울산시 남구 태화강역에서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산하 노조를 주축으로 구성된 '민중총궐기 울산조직위원회'가 개최한 울산시민 총궐기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비선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연합뉴스

1920년대 마피아를 소재로 한 갱스터무비 '언터처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대부 알카포네(로버트 드니로분)는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 만큼 감성적이지만 눈 밖에 난 부하를 야구방망이로 살해할만큼 냉혹한 인물이다. 1920년 금주법이 발효되자 알카포네는 21세 약관의 나이에 시카고로 무대를 옮겨 밀주와 밀수, 매춘과 도박으로 떼돈을 벌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허버트 후버였지만 알카포네는 '밤의 대통령'으로 불렸다. 영화 '대부'의 돈 클레오네처럼 막강한 자금력으로 부패한 정치인과 경찰을 손아귀에 쥐고 좌지우지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1930년 '공공의 적(Public enemy)' 리스트 1위로 알카포네를 선정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 시카고 젊은이들은 알카포네를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 등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밤의 권력도 투옥과 함께 끝났다. 48세 나이에 매독 후유증으로 초라하게 죽었다.

'밤의 대통령'이 반드시 어두운 뜻으로 쓰인 건 아니다. 언론사 사주 중에도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듣는 인물이 있었다. 지난 5월 작고한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은 '밤의 대통령'이라 불렸다. 조선일보의 성장을 견인한 신문 경영인으로, 한국 보수언론을 확장시킨 주인공이다. 방 고문은 조선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뒤 신문편집을 파격과 혁신으로 변화시켜 업계 리더신문으로 끌어올렸다. 제호의 힘을 앞세워 아젠다를 제시하고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 산업의 외형적 성장을 이끌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안보상업주의를 내세우고 정치·경제권력과 손을 잡는 등 '언론권력'을 누렸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최근엔 '밤의 대통령'이 다시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든 최순실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을 통해 한 명의 대통령을 뽑았는데, 사실상 두 명의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다"며 "낮의 대통령은 박근혜, 밤의 대통령은 최순실이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를 질타하며 박 대통령을 향해 '바지 대통령', '박근혜 부통령', '수렴청정' 이라는 표현도 했다. 그동안 세간에 나돌았던 국가 권력서열 1위가 최순실이라는 말이 헛소문이 아닌 셈이다. '밤의 대통령'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최씨는 철저히 음지에서 국정을 농단했고 비리의 배후가 됐다. 최씨 측근들로 비롯된 각종 추문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공사(公私) 구분을 못하고 사람을 잘못 본 박 대통령은 믿는 도끼에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

작가 이원호는 '밤의 대통령'이라는 소설에서 대한민국 밤의 세계에 군림하는 진정한 보스의 불꽃같은 삶을 그렸다. 주인공 김원국은 인신매매단을 궤멸하고 쿠데타 음모까지 척결하는 의리와 신념을 갖춘 정의로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현실속 밤의 대통령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에 절망감을 안겼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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