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붉게 물든 나뭇잎들이 해탈의 춤을 추며 하산한다. 무심천 갈대숲은 밤낮없이 순정을 노래하고, 그 때마다 드러나는 하얀 속살이 눈부시다. 어디선가 떠도는 혼령처럼 소쩍새가 운다.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자연은 이처럼 엄연한데 사람의 일은 헐겁고 무지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애미가 못나서 너를 지키지 못했구나. 부디 저승에 가서라도 굶지 말고 건강해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부자 되거라. 행복 하거라. 네가 이승에서 겪었던 모든 아픔들을 흐르는 물살에 풀어 놓거라. 애미는 너를 가슴에 묻었다."

고려 말로 추정되는 청주 명암동 무덤에서 쇠젓가락과 동전과 먹이 출토되었다. 신기하게도 가늘고 긴 쇠젓가락에는 '齊肅公妻 造○世亡子'라는 글씨가 점각되어 있었다. 제숙공의 처가 아들이 일찍 죽자 저승에서 굶지 말라며 젓가락을, 부자 되라며 동전을, 열심히 공부하라며 먹을 묻은 것이다. 이 중 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단산오옥(丹山烏玉)으로 지난해 보물로 지정되었다. 생명문화도시의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이 아닌가.

젓가락이라는 작은 도구 하나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잠자고 있던 우리 조상의 사랑과 아픔과 삶의 애잔함을 만나게 되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국립청주박물관에만 수저유물이 1천300여 점 있다. 청주권 대학박물관과 개인 소장품까지 더하면 5천여 점은 될 것이다. 일찍이 청주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비롯해 금속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고, 사후의 세계에 대한 염원과 함께 수저를 묻었기 때문이다. 이 많은 유물 속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다. 나라가 망해도 문화는 살아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사람이 죽어도 그 삶의 흔적은 영원해야 한다는 것을 묵상한다.

"12월 분디나무로 깎은, 아 소반의 젓가락 같구나. 님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놓으니, 손님이 가져가는구나. 아으 동동다리…." 우리나라 최초의 달거리 노래로 고려시대에 구전되다가 조선의 악학괘범에 한글체로 소개된 '동동'의 일부분이다. 고려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월령체 형식으로 노래한 것인데 세시풍습에서부터 자연환경과 시대적 자화상을 엿볼 수 있는 우리 문학의 보석같은 작품이다. 분디나무는 산초(山椒)나무다. 초정약수의 초(椒)가 바로 산초나무를 뜻한다. 산초나무와 초정약수는 똑 쏘고 알싸한 맛이 유사하다. 우리지역 야산에 대량으로 자생하고 있는데 10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분디나무로 젓가락을 만들었고, 그 잎으로 장아찌를 해 먹었으며, 그 열매로 기름을 짜서 귀한 음식에 사용했다. 항독성이 뛰어나 약용으로도 애용했다.

생명문화도시 청주와 젓가락은 운명같은 존재다. 소로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되었다. 비옥한 청원 땅에서는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쏟아지는 생명쌀이 있다. 젓가락 없으면 먹을 수 없는 청주삼겹살도 청주의 대표음식 중 하나다. 청주가 교육도시, 충절도시의 명맥을 이어오고 청주농악을 비롯해 전통과 현대의 다양한 공연콘텐츠도 젓가락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중일 3국이 1000년 넘도록 함께 사용해온 도구는 오직 하나. 젓가락이다. 어머니 젖을 뗀 후 젓가락질을 배우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젓가락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손가락, 발가락, 숟가락, 젓가락…. 이 모든 것이 내 몸이나 다름없다. 특히 식문화뿐만 아니라 교육, 공연, 스포츠, IT, 자동차와 조선산업 등 손재주와 관련해서는 세계 으뜸인 것도 젓가락문화 유전자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젓가락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되었다. 그 출발을 청주가 했다. 젓가락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젓가락 문화상품과 젓가락 콘텐츠도 개발하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해야겠다. 생명문화도시 청주, 젓가락유전자로 문화를 담고 미래를 열기 위해서 말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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