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국내 굴지의 대기업 하반기 입사시험 언어영역에 '실패를 자산화'하자는 골자의 '실패학' 문제가 출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자사 스마트폰의 폭발과 판매중단이라는 실패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얼마 전 국내의 한 백화점은 신규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직원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실패열전상'으로 불리는 이 상은 실패를 용인하는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직원들의 도전정신을 키우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요즘 실패학이 주목받는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다는 의미이며 문화적으로 성숙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매사에 지나치게 성공 가치를 우선한 탓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일보다 쉽게 갈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국내 연구개발과제들의 성공률이 높다는 것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성공이 실패에서 얻어지는 교훈과 결과라는 평범한 진리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다.

 실패학이 발전한 나라로 미국과 일본을 꼽는다. 미국에서는 1986년 챌린저호 폭발사고를 계기로 실패를 인정하고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교훈으로 삼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성공 확률이 1% 미만인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라는 단어가 가장 사랑받는다. 실패 경험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자랑하는 문화가 강점이다. 벤처기업인들이 실패담을 공유하며 서로 배우는 '페일콘(FailCon)' 행사가 2008년 처음으로 시작된 곳도 실리콘밸리다.

 일본 과학기술청 산하 21세기 과학기술간담회는 2000년 6월 '실패학을 구축하자'는 보고서를 통해 사회 전체가 실패의 자산을 활용해 전철을 막자고 제안했다. 실패학 전문가로 유명한 도쿄대 공대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의 저서 '실패학의 권유'는 2000년에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패에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에는 '포스트잇'의 3M, 청바지 리바이스 등이 있다. 그 외에 최근 중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에 인수된 핀란드 게임 회사 수퍼셀(Supercell)은 게임을 개발하거나 프로젝트에서 실패했을 때 샴페인 파티, 일명 실패 파티를 열어준다. 수퍼셀은 지금까지 개발 과정이나 출시 단계에서 모두 14개 게임을 접고 단 4개만 시장에 내놨다. 그래도 창업 6년 만에 글로벌 게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중 하나가 세계적 히트작인 전략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이다. 구글이 운영하는 비밀 연구소 구글X에서는 실패에 대해 동료들의 격려는 물론 심지어 진급까지 시켜준다.

 이와 관련한 혁신 아이콘들의 어록도 자주 인용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점진적 개선이란 개념을 존중하고 내 삶에서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난 좀 더 혁명적인 변화에 항상 매력을 느껴왔다. 왠지 모르겠다. 더 어려워서 그런지도. 혁명적 변화는 감정적으로 스트레스가 더 많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당신 완전히 실패 했어'라고 말하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는 '실패는 하나의 옵션이다. 만일 실패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혁신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혼다자동차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는 '99%의 실패가 1%의 성공을 이끈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경제 기적의 성공스토리를 써왔다.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 만큼 그 결과는 달콤했다. 그런데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실패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의식해 새로운 의욕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 경쟁만큼 지역 간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실패를 껴안고 성공을 만들어 가자는 지역 사회 분위기가 충만하지 않으면 혁신적 도전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창조적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역 발전의 기폭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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