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우리는 추억을 만들고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길에 나서는 것도 일상으로부터 탈출해 새로움의 가치를 찾고, 그 새로움을 통해 삶의 도파민을 얻으려는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아니던가. 어떤 이는 여행 중에서 가장 긴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삶 자체가 기나긴 여행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여행에 대한 사유의 보궁은 무엇일까. 기나긴 여행을 통해 얻은 인류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바로 공예다. 공예란 시대와 함께 해온 우리 문화의 총체적 결과물이다. 도자, 목칠, 금속, 섬유, 유리, 한지, 한옥 등 다양한 종류의 공예가 있지만 어느 시대에, 누가 만들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면 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도쿄의 뒷골목을 걷다보면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며 자연친화적인 소재의 절제된 미학을 만날 수 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만난 파리의 추억은 생태적이면서도 인간 중심의 크고 작은 문화아이콘에 밤잠을 설치게 된다. 수상도시 베니스에서는 장인들이 빚어낸 명품과 도시의 건축물을 바라보며 흥분을 감출 수 없다. 발 닿는 곳마다, 스쳐가는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의 기예와 혼맥(魂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문화양식이 되며 더 큰 미래를 만들어 가지 않던가.

그리하여 공예는 아름다운 쓰임이며 사랑이자 과학이다. 공예는 우리들의 삶이자 지혜이며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다. 공예는 느림의 미학이며 자연을 가장 많이 닮은 예술이다. 이 때문에 공예는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표현한다. 세계의 선진국은, 세계의 문화도시는 모두 공예를 기반하고 하며 공예적 삶을 통해 풍요를 일구어 왔다. 공예보다 우리의 삶의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청주는 1999년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공예축제인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개최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주변에는 다양한 공예마을과 공예작가들이 저마다의 꿈을 빚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형문화재, 명장에서부터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가지가지, 작가도 가지가지, 그들의 열정과 공예를 담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지금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열리고 있는 젓가락페스티벌 특별전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한중일 3국의 젓가락문화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데 젓가락이라는 도구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중일이 천 년을 함께해온 젓가락 속에 담겨 있는 문화유전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길이다. 유물에서부터 창작젓가락, 아티스트의 젓가락, 그리고 음식문화와 복식, 장단문화에 이르기까지 마음껏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도 공예는 살아 숨 쉬고 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만든 수저집, 99번 칠을 하고 100번째 장인의 숨결로 완성한다는 옻칠나전 수저, 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젓가락을 재현한 분디나무(산초나무)젓가락, 그리고 붓, 유기 등 다양한 장르의 장인과 공예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3천 여 개의 젓가락과 공예작품이 마중 나와 있으니 설렘 없이 어떻게 작품을 볼 수 있는가.

다양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직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설렘이 있다. 그곳에 숨어 있는 비밀을 하나씩 캐낼 때마다 감동에 젖고 사랑에 물들며 저마다의 가치에 고개를 끄덕인다. 젓가락, 아니 공예에 대한 숨막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으며 그 속살을 엿보며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의 가치를, 공예적 가치를, 더 나아가 한류의 가치를 만나면 좋겠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거리의 나무는 제 스스로 갈색 잎을 떨군 채 찬 바람 속에 무연히 서 있다. 바람부는 날 집을 지으라고 했던가. 올 해가 가기 전에 천 년의 향기 가득한 그곳에서 두리번거리자. 삶의 여백을 만들어 보자. 가난한 이들의 삶이란 늘 모자라고 아쉽고 헐겁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공예의 숲에서, 천 년의 스토리텔링에 귀 기울여보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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