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나는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마치 남편이 사무실 CCTV를 통해 자신을 지켜볼까 두려운 듯 사무실 천장을 힐끔거리며 불안하게 말을 이어가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상담했다. 나는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행복한 단어를 떠올리기 보다는,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는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이 겨울을 보낼까'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심지어 지금 눈 앞에 앉아 있는 상담자의 거취에 대한 걱정에 이어 지난해 겨울 화장실에서 갇혀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간 원영이 생각까지 연달아 떠오를 때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예민한 감수성을 원망하게 된다.

가정폭력은 단순 폭행사건보다 그 폭행의 수단·방법이 잔인하고, 오랜 시간 상습적으로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다.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에게 발길질을 하는 것은 예사이고, 칼이나 면도칼과 같은 흉기를 들어 상해를 입히는 경우도 다반사다. 더 나아가 전혀 대항할 힘이 없는 어린 아이에게 가혹행위를 하다 죽이기까지 한다.

폭행사건은 대체로 누군가에 의해서 수사기관에 신고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엄히 처벌해달라는 의사를 분명히 하며, 가해자는 진심이든 목전의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든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 반면, 가정폭력은 '집안일이다'라는 미명하에 제때에 신고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오히려 '저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에요'라며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심지어 주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아이들 아빠예요, 내일 출근해야하니 그냥 가주세요'라며 가해자를 변호 하기도 한다. 이렇게 피해자가 가정폭력 초기 대응에 미온적이다보니 가해자 역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가정폭력은 피해자에게 잘못이 없는 경우에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왜 때리던가요"라는 질문은 내가 처음 가정폭력 상담을 하면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이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아무런 이유없이 피해자를 죽도록 때리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이어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나마 겨우 용기를 내어 사무실을 방문한 의뢰인 중 상당수는 "남편이 제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온 것을 알면 변호사님께도 해를 끼칠지도 몰라요"라며 두려움에 떨었다. 나도 처음에는 정말 의뢰인의 남편이 찾아와서 사무실 집기를 부수거나, 나에게 직·간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연의 연속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변호사로서 가정폭력 문제를 접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가족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한 사람이 의외로 말이 통했다는 점이다.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심지어 판결까지 받을 필요도 없이 피해자의 이혼청구에 고분고분 응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물론 가정폭력을 외부로 노출시켜도 여전히 폭행·협박을 일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외부로 노출된 자신의 행동을 보고 스스로 놀라고, 그 결과 의외로 쉽게 피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자신의 폭력성이 가정 밖으로 노출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여러가지 이유로 이를 방치하다 더욱 심한 상해를 입기도 하는데, 가정폭력의 가해자를 사회로 끌어냈을 때 비로소 가해자에게 '가정폭력'이라는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적극적으로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용기를 갖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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