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유원대 경영학과 교수

오상영 유원대 경영학과 교수

우리는 교육과 경험, 그리고 역사를 통하여 다양한 지식을 내적 자산으로 축적한다. 남다른 교육열은 세계경제 10위권의 경제대국을 만들었고, 수천 년의 역사는 자신감을 통해 분출되는 저력이라는 불멸의 자산을 만들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원리를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로 기초 과학이 생활에 저변화(底邊化)되어 있고 SNS에서는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전문가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지속적인 혼돈 속에 있다. 혼돈의 기준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예견된 일을 방비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결과적으로 교육, 경험, 역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이 성공적으로 사회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나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역사에 투영된 인간의 행위가 어떠한 현상에 비추어 일시적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깊은 우리 민족은 저력이라는 불멸의 자산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사회적 시스템만 구축하면 된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괴팍하고 논리성이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 역사가 만들어준 불멸의 자산이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무너뜨려질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산물 속에서 다양성을 확인했고, 해법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경험과 지식이 사회에 투영될 때 발생하는 혼돈과 부정적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 과학이 사회에 적용될 때에는 물이든 컵 속에 막대가 휘어 보이듯 혼돈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므로 항상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한 현상은 지렛대를 이용한 후 나타나는 이중성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지렛대의 원리는 받침점의 길이를 이용하여 쉽게 반작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지렛대의 원리대로 나타나는 긍정적 성과에 못지않게 많은 부작용이 뒤따른다.

사회는 작은 이중성과 큰 이중성, 그리고 더 큰 이중성으로 겹겹이 싸여있으므로 통찰하지 못하면 과학을 이용할 수 없다.

예컨대 최근 한국 사회에 큰 문제점인 양극화가 한 예이다.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대기업 중심 정책으로 급속한 국가 발전은 이루었지만 그 결과로 양극화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정책은 선택의 문제이므로 잘잘못을 따질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 집중을 통한 경제 활성화 정책이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음에도 대비하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세계가 놀랐다고 하지만 그의 정책 노선도 크고 작은 이중성으로 싸여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과 지식을 통해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가 일관성이 결여되어 국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것처럼 말을 하지만 알키비아데스와 같은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진화된 자정시스템을 갖춘 미국은 그들 국가의 포지션을 잘 찾을 것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보편적인 경제생활의 원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론이 작은 힘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만을 양산한다면 이는 과유불급이다. 투입이 작고 성과가 좋으면 경제효과로는 최고이지만 반드시 부작용을 안고 있게 마련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빠른 성장은 기적을 이루지만 문화 결핍을 낳고, 혁신에 의한 성장은 소수의 힘으로 다수를 이끌 수 있지만 양극화를 낳는다. 극대화된 효율성이 반작용을 낳는 것이다. 환율의 상승이 하락 중 어떤 것이 좋은가 판단하는 것은 그때의 경제 사정에 따라 다른 평가를 할 수 있듯이 경험, 지식, 역사적 자산과 같은 불명의 자산도 잘 활용해야 이점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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