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이상하리만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난 초·중학교를 다니면서 한번도 남앞에서 말하기를 해본적이 없다.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무엇을 시킬까봐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두 눈은 바닥을 바라보기 바빴다. 그러다 어느날 선생님으로부터 책을 읽어보라고 지명을 받으면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읽기를 마치고 나면 그만 등에 땀이 흥건히 고이곤 했다. 아주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정말 누구앞에 선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런 내가 더구나 국어교사로 수십년동안 수업을 했다. 이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기적이다.

하지만 좋은스승이 되기위에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모른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집에서는 가족을 상대로 수업을 실연하기도 했고 국어책을 큰소리로 읽기도 수없이 했다. 가족들이 나의 멘토가 되어 주었다. 그러던 중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그덕분에 누구 못지않게 수업을 잘 해 낼수 있었다. 심지어는 연구수업을 잘했다고 상까지 받았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나는 내친 김에 웅변도 배워서 특기활동시간에 웅변부를 맡아 방과후에 직접 지도해 학생들이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용기와 쉼없는 연습으로 지금은 제천 평생학습센터에서 명품스피치라는 과목으로 일주일에 두 시간씩 강의까지 하게 되었다. 수강하시는 분들은 본래부터 내가 말을 잘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지금과 같은 나의 부끄러운 고백을 살며시 털어놓곤 한다. 그때서야 그 분들도 연습에 연습을 하면 얼마든지 남 앞에서 말을 잘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곤 한다.

20세기 10대 첼리스트 중의 한 사람인 프랑스의 모리스 장드롱이 1985년에 내한 했을 때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처음 첼로를 배울 때에는 카세트도 없었고 텔레비전도 없었습니다. 오직 악기와 악보만이 있었죠. 그래서 악보를 보면서 혼자 연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잘된 일이었습니다. 궁극에 이르면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니까요." 그런 조건에서도 그는 매일 오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피카소를 만난 장 드롱은 불쑥 그림 한 장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첼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그려 주신 첼로 그림을 하나 가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럽시다. 내가 근사한 첼로를 하나 그려주지요." 그런데 그 뒤 장 드롱은 피카소를 몇 번 더 만났지만, 피카소는 그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장 드롱은 피카소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약속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일을 잊기로 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어느 날, 피카소는 장 드롱에게 그림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첼로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이미 그일을 까맣게 잊고 있던 장 드롱은 깜짝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부탁을 받고 10년 동안 날마다 첼로 그리는 연습을 했지요. 이제야 내 마음에 드는 첼로를 그리게 되어 드리는 겁니다." 천재 화가 피카소에게도 진정 필요했던 것은 연습에 연습을 반복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직 꿈을 이루기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은 요령과 편법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하루 하루 알차게 여물어 아름답게 갈무리되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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