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충청'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충청'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얼마전 필자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다가 비자를 잃어버려 출국예정일에 출국을 하지 못하고 기약없이 발이 묶이게 된 것이다. 당황은 순간이었지만, 그때부터 비자를 새로 발급받아 중국을 떠날 때까지 황당한 일은 연속됐다.

중국에서 비자를 잃어버린 상황을 법적으로 설명하면 비교적 간단하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유 중에서 단지 "중국에서 출국할 수 있는 자유" 하나가 제한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 제한에서 오는 불편함은 기껏 길어져봐야 3주 정도면 회복될 수 있는 것이었으니, 필자의 중국 억류는 제3자의 관점에서는 웃어넘길 수 있는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쩌면 국내에서 생활인으로 바삐 살아오던 필자에게 강제로 주어진 휴가로 여기고 쉬다오면 될 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입국한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일 밤 비자 분실과 관련한 악몽을 꾸는 것을 보면 단지 조금(?) 불안한 상황에서 단 하나의 자유가 제약된 것에 불과한 것이지만 당시 필자의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던 듯하다.

출국이 거절된 직후 공항을 나오면서 비자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터라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알려주는 해결방법은 각양각색이었고, 그마저도 한중외교관계가 좋았던 시절과 껄끄러웠던 시절의 해결기간의 차이는 상당했다.

영사관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려하였으나, 비자문제는 중국국내 문제인 까닭에 도움에 정식 외교루트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의 행정은 변경이 잦았고, 그 변경된 버전의 해결방법을 아는 전문가도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알아낸 전문가들의 견해도 제 각각이어서 어떤 조언에 따를지 결정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해결방법을 어렵사리 선택한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됐다. 그 중 언어의 문제가 가장 컸으며, 설령 언어적인 문제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 역시 오로지 필자가 출국할 때까지 필자의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도움을 필자의 필요만큼 얻기는 쉽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 법적인 분쟁에 휘말려 필자를 찾는 의뢰인들이 겪었던 답답함과 필자가 중국에서 겪었던 곤란함은 매우 비슷한 구조로 생각된다. 어찌보면 구속사건 피의자들이 느끼는 불안함은 필자의 불편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으로 짐작된다.

의뢰인 대부분은 자신이 처해있는 법률적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해결에 이르는 설명도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법률용어로 되어있어 말이 잘 통하지 않음은 물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주변에 조언을 구하려 하여도 전문가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돈을 써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해결하려고 하더라도 그마저도 결론이나 방법에 있어서의 전망이 변호사들마다 다르기 일쑤여서 변호사 선임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어렵사리 변호사를 선임한다 하더라도 변호사가 사건 당 할애할 수 있는 시간적 한계 때문에 의뢰인이 느끼는 답답함과 곤란함을 모두 해소해주기는 어렵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아마도 민ㆍ형사적인 문제로 필자를 찾는 의뢰인들에게 있어서 필자는 마치 한밤중 어두운 숲속에서의 손전등처럼 절박했을 것이고, 변호사인 필자로서는 그분들의 절박함에 응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주는 한계, 사건이 주는 한계 등을 이유로 의뢰인의 절박함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된다면,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 했냐는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것 같다. 필자는 이번 고난을 통해서 어떤 변호사가 되어 의뢰인의 절박함에 어떻게 응답하여야 할지에 대하여 큰 숙제를 하나 받아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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