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한 때 '삼무(無) 시대'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정답과 비밀, 공짜 등 세 가지가 없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새삼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는 미국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이를 지칭해서 '트럼프 쇼크', '트럼프 쓰나미', '트럼프 폭풍', '트럼프 한파', '트럼패닉' 등 수많은 신조어가 등장했다. 주요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들이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측면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사회 등 전반에 걸쳐 다반사로 분출되고 있다. 급격하게 전방위 시스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의 핵심어는 단연 불확실성이다. 현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정답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사는 셈이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먼저 세계적인 여론기관 '갤럽'의 짐 클리프턴 회장은 모바일 기기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휴대폰으로 걸면 60~80%는 응대 없이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정밀하게 연령과 계층을 감안한 표본조사 기법도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하소연이다.

또 다른 하나는 리처드 브로디(Richard Brodie)가 정의한 '마인드 바이러스'의 확산이다. 질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침투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변화를 일으킨다.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처럼 대선 기간 중 등장했던 SNS 가짜 기사 사건이 일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가짜 기사 제작자 사이트를 방문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과 부합하면 사실 확인 없이 그냥 믿고 공유했다. 정보화 사회가 진전될수록 마인드 바이러스의 침투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선에서 모두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인도 벤처기업이 개발한 인공지능 '모그IA'는 한 달 전부터 트럼프 당선을 예견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SNS에서 수집된 2000만개 데이터 분석에 기초했다. 구글의 '구글 트렌드'도 트럼프를 선택했다. 구글 트렌드를 통해 지난 한 달 동안 클린턴과 트럼프 키워드의 관심도(특정 기간 검색어의 인기도)를 살펴본 결과였다.

누구보다 가장 부각된 사람은 페이팔(온라인 결제회사)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이다. 실리콘밸리의 동료들이 한목소리로 '트럼프 반대'를 외칠 때, 틸은 혼자 '트럼프 찬성'을 밝히면서 '공공의 적'이 됐던 인물이다. 그는 페이팔 창업부터 페이스북·링크드인 등의 스타트업 투자 그리고 이번 미국 대선까지 상황 판단과 투자 결정에서 실패한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한 후 페이팔의 기존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개발하는 팔란티어(Palantir)를 공동 창업했다. 이 기업은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2016년 유니콘(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스타트업) 리스트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통념을 뒤집고 미래 가치를 보는 안목으로 관심을 모은다.

두 가지 성공 사례의 공통점은 빅데이터다. 물론 빅데이터가 만능일 수는 없다. 일부 경영학계와 산업계의 우려도 크다. 그렇지만 빅데이터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옥스퍼드대 쇤베르거 교수는 '빅데이터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꿀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이든 지역이든 경영은 선택이다. 한정된 가용자원 하에 방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의사결정하는 기업과 지역만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단편적이고 인위적인 프로그램에 의존하기보다 데이터에서 통찰력을 끌어내는 경영 전략이 중요하다.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직관은 실패해도 빅데이터는 성공한 사례를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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