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의 한복판에 와 있다. 평화로운 숲길, 토요일 오후, 몸도 마음도 가까운 산길을 오르고 있다. 정상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민다. 저 멀리 고향 집이 보인다. 언덕위에 우뚝 서 있는 십자가 탑은 전설이라도 품고 서 있는 것 같다. 고향집 마당에서 볏단을 하늘높이 아버지를 향해 던지고 있는 15살 내 모습이 보인다. 추수철이 되면 논배미에 베어 놓은 볏단을 소달구지에 실고 집 마당에 부려놓는다. 다음 마차가 도착하기 전에 마당 가득한 볏단을 치워 놓아야만했다. 볏단을 높이 올리는 일은 농구공을 골대에 넣는 것만큼이나 고되고 힘들었다. 나는 어서 이일을 끝내고 가야 할 곳이 있기에 마음이 더욱 분주했다.

오늘은 목요일, 저녁 예배가 있는 날이다. 나는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요즈음, 교회에 가는 것이 즐겁다. 얼마 전 젊고 잘생긴 전도사님이 오셨다. 독실한 신자들이 들으면 경을 칠 일인지도 몰라도 그 교회를 다니는 여자애들은 그런 이유로 교회에 왔다. 예전에는 점잖고 경험이 많은 전도사님이 설교를 했지만 지루하고 졸리기만 했다. 옆자리를 돌아보면 아이들은 연습장을 꺼내 낙서를 끼적거리거나 졸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도사님이 '기도 합시다' 하고 한마디만 해도 시를 읊조리는 듯 목소리가 낭랑했다. 찬송을 할 때면 메시아가 나타나신 것만 같았다. 중학교 2학년 나의 이상형은 신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전도사님이었다.

엄마를 따라 다니게 된 교회이었지만, 나의 주일학교 생활은 달콤하기 짝이 없었다. 언덕을 오르고 논밭 길을 가다보면 종아리에 알이 배길 지경이었지만 다리가 아픈 줄도 몰랐다. 산에는 들꽃이 많았다. 들국화, 구절초 고마리를 꺾어 유리병에 꽂아 강대상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그를 향한 나의 순수한 사랑은 제이의 십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신자가 되어있었다.

교회 옆에는 작은 사택이 있었다. 그 사택에 거주하는 전도사님은 이 교회를 처음 개척한 칠십이 넘은 테레사 권사님과 거주를 하였다. 권사님은 생김새나 걸음걸이가 테레사수녀님을 닮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전도사님은 가끔 우리를 사택으로 불러들여 괴도 루팡 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발자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설교를 할 때보다도 더 논리적으로 그는 설록 홈즈가 된 듯 흥미진진했다. 테레사권사님은 엄마와 아주 가깝게 지내셨기에 전도사님의 생활을 전해 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하루생활은 온통 주님께 향해 있다고 했다. 그가 심방을 왔다. 마침 벼 타작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온 가족과 여남은 되는 동네 아저씨들이 손을 맞춰 탈곡을 했다. 알곡을 털어낸 짚단을 마당 끝에 쌓는 일은 오빠들 몫이었다. 바쁜 걸 눈치 챈 그는 일을 거들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30분도 안 돼 얼굴과 온몸에는 땀과 먼지로 뒤범벅되었다. 플러스펜 같았던 그의 목소리는 매직팬 처럼 거칠고 굵은 신음소리를 냈다.

"전도사님이 다른 지방으로 사역을 떠난단다" 봄이 올 무렵 어머니는 그에게 전해줄 선물을 가지고 나섰다. 가을바람이 코끝으로 향기롭게 머문다. 지금쯤 그는 목사님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그 자리에 눈이 머물고 바라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추억은 나락으로 가득 찬 토광처럼 풍요롭고 찰진 모습으로 그리움을 살찌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