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는 총수들은 거수해달라는 요청에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허창수 GS 회장 등이 손을 들고 있다. /뉴시스

최근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집중적인 추궁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진땀을 흘렸다. 청문회장에선 이들을 향해 막말, 호통, 조롱이 쏟아졌다.

수출부진과 내수침체라는 이중고속에서 청문회장에 끌려나온 대기업 총수들의 모습은 위기에 직면한 오늘의 한국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날 9명의 대기업 총수들은 정경유착의 낡은 관행을 청산하라는 국회의원들의 요구에 공감하면서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업들의 지원에 대가성이 없다고 한 결 같이 주장했다. 이날 국회 풍경은 전경련의 일해재단 자금 모금 때문에 '5공 청문회'가 열린 28년 전에서 단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진국에 진입하겠다고 장담하지만 전형적인 후진국 병인 정경유착이라는 망령(亡靈)은 떨치지 못했다.

5공 청문회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내라고 하니 내는 게 편안하게 산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총수들은 유사한 답변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재단 출연이 강요냐 뇌물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 당시에 청와대의 지시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권력의 뜻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눈 밖에 난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퇴진을 요구했다. 보복을 우려했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이들이 대가성 없이 순순히 수십억, 수백억원의 출연금을 냈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청와대의 마인드가 잘못됐다. 청와대는 경제개혁과 규제완화를 통해 국내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반강제적으로 출연금을 뜯어냈다. 경제 활성화에는 관심이 없고 기업의 아킬레스건을 잡아 출연금을 갈취하다시피 했다. 말 안 듣는 기업은 부당한 압력을 통해 경영진을 몰아내려 했다. 이런 식으로 대기업 53곳이 최순실이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돈이 774억원에 달했다. 그나마 이렇게 조성한 돈도 공익사업으로 포장된 비선실세들의 사익추구에 쓰였다. 대신 대기업은 앞으로는 출연금을 내면서 뒤로는 특혜를 챙겨왔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거짓이다. 이런 '조폭식 정치'가 통용되는 나라의 경제가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또 출연금과 특혜가 거래되는 '검은 커넥션' 때문에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것도 국가경제에 마이너스다. 특히 본연의 역할을 잊고 정치권의 자금조달창구로 전락한 전경련은 이번기회에 문을 닫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경유착은 국민들에게는 분노를 일으켰지만 대외적으로는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이어졌다. 구본무 LG회장의 답변대로 강제출연금을 막으려면 국회에서 준조세를 완전히 폐지될 수 있도록 입법화해야 한다.

이번 청문회이후 후속조치 없이 '말의 성찬(盛饌)'으로 끝난다면 다음 정권에서도 '정경유착'으로 인한 청문회는 계속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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