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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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붕와해(土崩瓦解). 흙이 무너져서 기와가 다 깨진다는 뜻이다. 1529년, 중종이 나랏일을 그릇되게 하는 것을 보고 신하들이 상소문을 올렸다. 나라가 토붕와해의 상황인데도 임금이 이를 깨닫지 못하면 큰 근심을 자초한다는 내용이었다. 법과 원칙도 없이 자질구레한 일이나 살피고 사사로이 정사를 펼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직언한 것이다. 불통즉통(不通則痛). 통하면 안 아프고 안 통하면 아프다. 성종 임금이 어느 날 승지와 사관, 육조와 삼사에 붓 40자루와 먹 20개씩을 각각 내렸다. 성종은 "이것으로 내 잘못을 써서 올려라. 너희는 임금을 바른 길로 이끄는 직신(直臣)이 되어라"며 신하로부터 직언 듣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공자가 태산 옆을 지나가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를 잡고 듣고 있다가 제자인 자로를 시켜 그 연유를 묻게 했다. 부인은 시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이곳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소리를 들은 공자는 "제자들아,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간디는 원칙없는 정치, 노동없는 부, 양심없는 쾌락, 인격없는 교육, 도덕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없는 신앙이 사회를 망친다고 했다. 80년 전의 일인데 지금 우리 사회에 주는 경고이자 성찰의 메시지다.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행복, 자유, 미덕 세 가지를 주목하며 의무와 권리가 선행되지 않는 결과물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개인의 욕망과 사적 견해를 앞세운 것들은 그 결과가 선하고 풍요로울지라도 공공의 이익과 번영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설마~. 그럴 리가"라며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다. 정의는 없고 네 편 내 편만 있는 이 땅의 정치적 모순과 사회적 단상의 하나로 생각했다. 아니, 제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갈망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쩌다가 백성들이 나라 걱정을 해야 하고, 탄핵과 하야를 외쳐야 하며, 북풍한설에 거리와 광장으로 뛰쳐나오게 되었을까. 성난 촛불을 보고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저 오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백성만을 생각해야 할 사람이 되레 깊은 상처를 주고 있으니 이 땅에 정의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촛불은 횃불이 되고 횃불은 다시 용광로가 되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그 용광로는 탄핵가결을 이끌었고 진정한 시민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수적석천(水滴石穿).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진리 앞에서, 탄핵가결이라는 뉴스 속에서 가슴이 먹먹했다. 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다. 엄동설한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횃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슬픈 시대를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국민이 이룬 탄핵, 이제는 정치가 응답해야 할 때다.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반성부터 해야 한다. 민심을 제대로 읽고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적 욕망과 이해관계 때문에 나라가 수렁에 빠지면 안된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시민들도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넘어 상생과 협력의 가치를 꽃피워야 한다.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군 이 땅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지혜와 열정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처음 가는 길, 낯선 길을 나서고 있다. 바람은 차고 안개 자욱하니 두려움이 밀려온다. 신영복 선생은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 데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시대가 얼마나 들어왔느냐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 시대를 정직하게 호흡하고 시대와 함께하는 삶,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 말이다.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자신의 정조를 팔지 않고,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제 곡조를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의 전령 복수초는 꽃대를 준비한다. 우리의 삶도 이처럼 엄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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