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베스트셀러가 됐던 1969년도의 서울인구는 500만명 안팎이었다. '무작정상경'이 사회문제가 됐던 당시 서울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10%가 넘었다. 해방 당시 서울의 인구는 90만명, 이 인구가 10배 이상 늘어나는 데는 불과 40년이 걸리지 않았다. 1800년에 인구 100만명이 된 영국 런던이 인구 800만명을 넘어서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140년이었다. 서울은 짧은기간에 거대도시로 탈바꿈했다. 패티김은 '서울의 찬가'로 서울의 번영을 노래했다. 서울은 빠르게 팽창하면서 블랙홀처럼 자본과 인력을 빨아들였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과도한 수도권집중 현상을 우려해 행정수도 이전을 밝혔을때가 1972년이었다. 당시 인구는 600만명도 채 안됐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1988년 서울인구 1천만명을 돌파했다. 1992년 1천93만5천230명으로 인구의 정점이었다. 서울을 처음 방문하는 유럽인들은 두가지를 보고 가장 놀란다고 한다. 서울 인구와 한강이다.

'메가시티' 서울이 점차 작아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인구는 1천만명이 무너졌다. 행정자치부가 2008년 1월이후 올 11월까지 시·도간 사회적 인구변동을 분석한 결과 순유출이 많은 지역은 서울이었다. 최근 9년간 서울에서 순유출된 인구가 89만 2천명에 달했다. 거의 청주 인구가 사라진 것이다. 서울을 떠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주로 화성과 남양주, 김포, 용인 등 수도권으로 옮겼지만 세종시와 혁신도시로 유출된 인구도 꽤 된다. 왜 서울을 떠날까. 집값과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3년전 통계청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거지(42%)가 인구이동의 가장 주된 요인으로 꼽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울 집값이 빠르게 상승해 집장만이 쉽지 않다. 전세난도 심각하다. 서울의 주택보유율은 2012년 기준 평균 98%로 지방 106.2%보다 낮은 수치다. 상대적으로 자가주택 보유가 적어 서울사람들은 전세난의 타격이 심할 수 밖에 없다. 또 KTX, 고속도로 등의 교통수단이 실질적으로 발전하면서 탈 서울의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크게 낮아진 것도 인구감소를 뒷받침하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강원도는 서울에서 1시간 거리가 됐고, KTX의 개통으로 전국 2시간 시대가 열렸다.

눈길을 끄는것은 서울을 떠난 세대는 귀농·귀촌한 중·노년층이 아니라 주로 2040세대였다. 취업난과 함께 '전세난민'으로 사는것이 지쳤기 때문이다. 당연히 노령인구는 늘고 유소년인구도 줄고 있다. 지난 16년간 학령인구는 반토막났다. 서울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 서울은 예전만큼 젊은층에게 친절한 도시는 아니다. 높은 주택가격으로 내집마련은 이루기힘든 꿈이다. 그렇다고 서울생활이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 서울은 지방보다 생활비가 갑절이나 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에서 취업이 보장되고 필수적 소비지출 비용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한 서울생활에 매력을 못느끼는 젊은층의 탈서울 행렬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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