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지난해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는 인물보다는 개성 있는 매력을 앞세워 '씬스틸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40대 배우 라미란을 대표 제품인 '갈색병' 모델로 선정해 화제를 뿌렸다. 사회생활이 활발해진 4050세대 평범한 여성들이 중년 연예인들의 화장품 화보와 영상을 보고 동질감을 느껴 따라 해보고 싶다는 '모방심리'를 자극하겠다는 의도다. 유럽에선 젊은 미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화장품 광고에 50대가 등장한 것이 벌써 20년 전이었다. 화장품업체 '보타린'은 '미(美)는 50세에 끝나지 않는다'는 카피로 중노년층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늘어나는 흰머리와 주름 때문에 우울해진 중년들에게 '나도 젊어질 수 있다'는 열망을 갖게 한 것이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시장의 위축으로 어떤 산업도 성장하기가 쉽지 않지만 뷰티 산업에는 불황이 없다. 화장품 소비층이 시니어, 남성, 청소년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타킷층의 확장과 '한류열풍'도 있지만 '평균 수명 연장'이 큰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안티에이징'에는 과감히 지갑을 열고 있다.

 피부과·성형외과 시술을 받은 경우도 흔해졌다. '최순실 게이트'는 태반주사, 백옥주사, 신데렐라주사 등 과거엔 일부 부유층 여성들만 애용하던 안티에이징 주사가 많은 여성들 사이에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안티에이징 제품과 서비스를 활용하는 이유는 '젊음에 대한 관심'과 '외모가 곧 능력'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멋진 외모를 소유하는 것은 자기관리의 척도라고 보는 것이다.

 최근 종편채널의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박근혜 대통령(이하 박근혜)의 필러 시술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필러(filler)는 성형외과에서 주름살을 펴는 목적으로 피부에 필러라는 젤리와 같은 물질을 피부에 주입하는 시술이다. 필러를 주사기를 통해 주입하는 과정에서 주사바늘이 혈관을 건드리면 혈액이 빠져나와 피멍이 생길 수 있는데 박근혜의 입 주변 피멍 자국이 필러 시술을 의심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필러시술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자칫하면 실명(失明)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건강이 국가안보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비선의료행위가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영국방문 중에는 호텔 객실에 '메이크업 부스'를 연상케 하는 스크린형태의 장막과 조명등을 설치를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박근혜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에게도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박근혜가 '국가와 결혼했다'고 말했지만 배우자인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면 '안티에이징' 화장과 시술도 필요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젊음에 대한 욕망에 없을 리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이 대통령 사생활에 집중하는 언론의 무차별적인 보도태도에 비판도 만만치않다. 하지만 최순실이 피부시술에만 3년간 8천만원을 썼다는 보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것을 보면 대통령은 국가위기에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기 보다는 용모관리에 더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의외의 모습이다. 국론이 분열되고 국정은 실타래처럼 엉킨것이 대통령의 사생활과 연관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최근 6년동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선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의 별명은 '무티 엔지'(엄마 앙겔라)다. 주말에는 직접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매일 남편을 위해 아침밥상을 차려준다고 한다. 샤넬 디자이너 칼라거벨트로 부터 의상이 촌스럽다고 독설을 들을만큼 패션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메르겔은 국가지도자로서 무엇이 소중한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박근혜보다 두살 젊지만 얼굴에 주름이 잔뜩 있고 펑퍼짐한 아줌마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총리로 10년이상 롱런하면서 독일정치의 아이콘이 된 것은 독일을 세계경제의 모범생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모성리더십은 이미지메이킹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박근혜는 앙겔라를 벤치마킹하려고 했다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했다. 국가지도자에겐 외모와 젊음 같은 이미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덕목이 필요하다.

 내년에 국민들은 새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 조기대선을 맞아 현란한 수사(修辭)와 '포퓰리즘'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차기대선주자들의 행보를 보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한꺼풀 벗겨질때 전혀 새로운 민낯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두 번 속지 않으려면 '입'보다는 '발'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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