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유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신뢰'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화폐'와 같다. 지난해 10월, 슈뢰더 전 독일총리가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에서 연설한 강연내용의 키워드이다.

 3일 간 300만원에 달하는 고가(高價)의 수강료를 지불한 청중에게 던진 화두가 '신뢰'였다. 그는 수백 년 간 전쟁을 계속했던 유럽이 70여 년의 사상 유례가 없는 긴 평화를 얻게 된 것은 다자간의 대화와 협력으로 신뢰를 조성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최근 유럽의 정체 상태 또한 국가 간 협력 부족으로 신뢰가 낮아진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1천명이 족히 넘어 보이는 청중에게 어쩌면 흔해져버린 신뢰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중의 태도는 진지했고, 최근의 국내 정치 행태를 보면 슈뢰더의 한마디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었음을 느낀다.

 다산 정약용은 백성을 위해 일하는 목민관이 대중을 통솔하는 길은 위엄과 신용밖에 없다고 하였다. 최근 한국 정치도 가짜 신용이 밝혀지면서 대중을 통솔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신뢰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통해 전파되어 왔다.

 공자는 국가 지도자가 지켜야 할 兵, 食, 信 가운데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信으로 신뢰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또한 현대 사회학자들도 기업 경영에 있어서 구성원 간의 신뢰가 훌륭한 기업을 만드는 요체(要諦)라고 하였다. 그러나 많은 조직과 사회에서 신뢰의 중요성은 공감하지만 신뢰하는 조직문화의 구축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거나 특별한 정책을 실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새해를 맞이하였다. 새로운 각오와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포춘이 발표한 미국의 일하기 좋은 기업, 파이낸셜 타임즈가 발표한 영국의 일하기 좋은 기업, 한국, 일본, 중동 등 아시아의 좋은 기업 등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점은 '신뢰'였다고 한다. 이미 구성원 간의 신뢰가 급여, 복리후생 등 어떠한 요인보다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SNS를 기반으로 네트워크가 강화되고 있어 조직 내 구성원간의 신뢰는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사회학자 짐멜(Simmel)은 신뢰는 앎과 모름 사이에 있으며 그 결정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신뢰는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기 때문에 신뢰 여부가 조직의 생산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럼 신뢰란 무엇인가.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좋은 기업의 조건인 신뢰구축 방법은 기업에 맞는 신뢰로서 개념 정리가 되어야 한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어둠의 개념이 정의되지 않으면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한 것과 같이 신뢰를 정의하지 못하면 뜬구름 잡는 꼴이 된다. 예컨대 기업경영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경영을 하고자 한다면 그 기업의 비전에 맞게 개념이 정리되어야 한다. 신뢰는 책임, 일관성, 정의, 배려, 인정, 이해 등 다양하게 인식될 수 있다. 특히 기업 구성원의 사고(思考), 조직 문화, 경영진과 부서장의 의지 등이 모아진 결정체가 존재해야 한다. 탁상공론으로 신뢰를 규정하고 슬로건화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구성원 모두와 소통하면서 사고와 인식을 종합하여 조직의 믿음 정도를 측정한 후에 기업에 맞는 신뢰 수준을 목표로 정해야 한다. 두려워할 것이 없다. 힘들게 쌓은 신뢰가 한 번의 실수로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진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천해보면 알 수 있다. 신뢰한다는 것은 실수를 구분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둠과 빛이 하나인지 또는 우열을 다투는 대상인지 사유(思惟)해보면 알 수 있듯이 전체 구성원과 대화하고 소통하면 신뢰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또한 조직에 맞는 신뢰 가치 기준도 정해진다. 다음 절차로 절대가치의 기준인 신뢰를 개인, 조직, 사회에 맞는 상대가치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구성원들과 소통을 하다보면 인연의 깊이가 중요한가, 인연의 가치가 중요한가를 놓고 긴 시간을 토론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대화와 토론을 벌이다보면 신뢰가 싹트고 그 신뢰의 가치 기준이 정해진다. 그리고 신뢰가 구축되면 기업의 생산성은 그 어떤 캠페인보다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상영 유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의 한 복판에 보신각이 있다. 서울에 있는 4대문, 즉 동쪽의 흥인(仁), 서쪽의 돈의(義), 남쪽의 숭례(禮), 북쪽의 홍지(智) 등이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보신(信)각이 있다. 신뢰(信賴)를 널리 알려지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서울의 한 복판에서 2017년은 분열과 투쟁보다는 온 국민이 굳건하게 연결되는 출발점이 시작되는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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