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참 어이가 없네'. 2년 전 천만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 조태오가 냉소적인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다. 이 영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이'가 무슨 뜻인지 배웠다. 맷돌을 돌리려는데 손잡이인 '어이'가 없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조태오를 어이없게 한 것은 하청업체 트럭 운전기사가 밀린 임금을 받으러 온 것 때문이 아니라 그 돈이 그에겐 '껌 값'인 '30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재벌 2세에겐 하루저녁 술값도 안 되는 '잔돈푼' 때문에 회사 정문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와 돈 달라고 한 것에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금수저는 그 300만원이 흙수저에게 얼마나 피 같은 돈인지 모른다. 열혈형사 서도철을 정의감에 불타게 한 것은 영화적인 상상력이 아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우리 현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수저계급론'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상징적인 신조어다. 그리고 그 용어에는 젊은이들의 좌절과 자조와 분노가 숨어있다.

 작년 11월 끝난 미국대선은 '미치광이'와 '거짓말쟁이'의 대결이라는 말을 들었다. 트럼프와 힐러리 모두 대통령감으로는 함량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도 '술취한 삼촌'이라는 조롱을 받았던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일자리 부족, 불평등 확대, 중산층 몰락이 결정적이라고 본 전문가가 많았다.

 기자는 6년 전 '反윌가 시위'에서 드러난 해묵은 과제가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뉴욕에서 직접 지켜 본 反윌가 시위는 널리 알려진 대로 1%의 이익을 위해 99%가 희생당하고 있다고 본 젊은층이 주축이었다. 이제 3040세대로 성장한 그들이 선거판을 좌우했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그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 세대별, 계층별로 쏟아내는 불만의 소리는 다양하지만 '부의 불균형'과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분노는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지금 한국사회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국제자산정보회사인 '웰스-X'와 듀크대 연구진이 전 세계 갑부들 부의 원천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만 유독 '금수저'가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맨손으로 부를 일구어낸 자수성가형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우리나라는 33.3%에 불과했다. 조사대상 53개국중 47위로 세계 최하위권이었다. 또 국내 갑부들의 명문대 졸업 비율이나 MBA(경영학석사) 이수 비율은 세계 최고였다. 유독 우리나라만 분에 넘치는 재산을 상속받고, 좋은 교육을 받은 금수저가 많았다. 반면 한국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과 자영업자는 무너지고 있다. 중산층이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침체된 주택경기에 갇혀 한계상황에 달하면서 아래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갑부가 많은 것은 바람직하다. 젊은이들에게 성공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우리사회가 역동성을 갖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편법과 반칙이 동원된다면 얘기는 다르다.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혹은 부의 대물림을 통해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면 사회불안을 촉발시킨다. 최태민 일가의 재산형성 과정과 삼성SDS의 상장으로 이건희 삼성회장의 세자녀들이 5조원대의 재산을 더 불렸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간 양극화 등 사회 각 부문에서 중간층이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양분화 되는 현상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로 사회가 양극화되어 가는 현상을 흔히 '20대80의 사회'라고 한다. 이는 부자 20%와 빈자 80%를 의미하는 말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상당수가 서민층 내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 무엇보다 엘리트코스를 밟은 금수저들의 천박한 행태가 줄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재산이 그들을 우월적 지위를 가진 귀족으로 만든 것이다. 조태오는 가공의 인물이 아니다. SNS에 '능력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로 젊은이들의 감정에 불을 지른 최순실 딸 정유라와 비행기 내에서 술취해 난동을 부린 기업인 2세, 술집에서 소란을 피운 대기업 회장 아들 등은 수저계급론의 실체를 보여준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이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지수가 높아진다면 反1%에 대한 반발은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적 불만 세력으로 집단화되면 달콤한 말로 이들을 현혹시키는 세력이 있다. 트럼프처럼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들에게 효용가치가 높은 무기는 귀에 솔깃한 포퓰리즘 공약이다. 그래서 대선후보 검증기간이 너무 짧은 이번 '벚꽃대선'은 대중들을 현혹시킬 허황된 공약의 경연장이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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