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가 축복인 시대가 있었다. 환갑, 진갑엔 잔치까지 했다. 이젠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장수엔 '고독', '질병', '가난'이라는 리스크가 따른다. 장수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홀로 살다가 쓸쓸히 죽는 것을 의미한다. 한창 사회생활을 할 때는 주변에 그렇게 많던 사람도 나이 먹고 세월이 흐르면 하나둘씩 곁을 떠난다. 심지어 가족들도 곁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핵가족화가 심화된 사회에서는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사별하면 자녀들과의 왕래도 예전 같지가 않다.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길다는 일본이 그렇다.

노인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말과 고독사(孤獨死)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무연사회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없는 사회', '인연이 없는 사회'라는 뜻으로 고령화와 저출산, 개인주의로 인한 사회 안전망 해체가 가져온 삭막한 현실이 담겨있다. 무연사회에서는 홀로 죽어도 아무도 모른채 수개월째 방치되는 사례도 많다.

4년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일본 감독 제제 다카히사의 '안토키노이노치'였다. 우리나라에선 '고독사'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이 영화에선 '고독사'를 처리하는 직업이 등장한다. 홀로 사망한 노인의 유품정리업을 하게 된 젊은이들이 죽음을 대면하고 세상과 사랑,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면서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고독사에 대한 슬픈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나온 유품정리업이 일본에선 '무연비즈니스'라고 불린다. 고독사 한 사람 주변과 유품정리, 화장 등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청소업이다.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수백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요금은 30만엔(360만원)안팎이라고 한다. 이삿짐센터를 하던 '요시다 다이치'라는 사람이 2002년 졸지에 부모를 잃은 어린자매의 부탁을 받고 유품정리를 거든 일을 계기로 '키퍼스'라는 유품정리 대행업체를 차린 것이 시발점이다.

무연비즈니스는 이밖에도 다양하다. 독거노인과 하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한 대화파트너사업도 번성중이다. 동네슈퍼가 급감하면서 독거노인을 위한 쇼핑대행업, 전기포토 사용여부를 무선통신으로 파악해 가족과 지인의 휴대전화로 자동으로 알려주는 생존확인 시스템, 노인을 위한 공유주택, 고독사를 우려해 독신자와 임대계약을 꺼리는 집주인이 많다보니 보증인위탁계약사업도 등장했다.

최근 신문엔 고독사 기사가 유난히 많다. 지난달 말 광주의 한 주택에서는 최장 8개월간 방치된 50대 남성의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 복권 수천장과 함께 발견된 이 남성은 형제들과 인연을 끊고 50대가 되도록 홀로 살았다고 한다. 2년 전에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김병찬(46)씨가 춘천의 임대아파트에서 쓸쓸하게 홀로 숨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1인가구 비율은 27.2%(523만가구)다. 고독사하면 고령층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50대 고독사는 2년전에 비해 60% 늘었다.

개인주의와 가족의 붕괴로 '독신자'와 '고독사'가 늘고 있다. '무연비즈니스'는 이제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지자체는 무연비즈니스를 민간영역으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공공복지차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