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창조경제팀장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모든 생명은 어둠으로부터 왔다. 어둠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빛은 더욱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법이다. 숲속으로 달려가면 어둠속에서 빛나는 햇살과 눈부시도록 찬연한 대지의 기운을 만날 수 있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고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기지 않았던가.

사람이든 짐승이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절반은 어둠의 몫이다. 암흑과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휴식과 새로운 도전과 기회와 상상과 창조의 여백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울고 싶을 때 영화관에 간다. 어둠과 적막감으로 가득한 밀폐된 그곳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보며 스스로를 달래거나 닦달한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얀 눈물을 길어 올린다. 아무리 퍼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브로맨스 영화 '형'을 볼 때도 그랬다. 내 삶을 뒤돌아볼 때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새로운 아이템을 얻기 위해 내 머리를 쥐어짤 때도 낮보다는 밤이 좋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은 상상력과 직관"이라고 했다. 이어령은 "의미는 흔적으로 통해 전달된다"고 했다. 그 시작은 어둠이다. 그래서 어둠은 암흑의 세계가 아니라 상상력이 발작하는 시간이며 창조의 숲이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성찰하며 새로운 성장통을 허락하는 시간이다.

2016젓가락페스티벌 특별전에는 의미있는 유물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 방문객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 수저유물과 옹기, 그리고 소반이다. 한 두 개가 아니다. 저마다 100여 개에 달하니 평소에는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지만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 먹먹한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 이 많은 것들이 어떻게 모아졌을까. 모두들 어둠을 뚫고 세상의 빛을 본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며 지역 시민의 수집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능했다.

수저유물의 대부분은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망자를 위해 저승에서 잘 잡수시라며 새로 만든 것도 있고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것들도 있다. 유물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고대인의 삶과 욕망을 생각한다. 오래된 숟가락일수록 크고 화려하며, 손잡이에 다양한 문양이 담겨있고 휘어져 있다. 권력,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상징했던 것이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우리의 삶과 함께 해 온 수저를 본다. 그 곳에는 한 사람이 살다 간 거대한 삶의 이야기, 스토리텔링이 담겨 있다.

흙에서 비롯됐으나 흙이 아니며, 불에서 태어났으나 불이 아니다. 흙과 불로 빚었으나 그 속에 마음을 담으니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한국의 옹기와 장독대 문화 얘기다. 옹기는 인간이 손으로 빚은 작품 중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예술이다. 큰 놈은 옹기, 작은 놈은 종기라고 했는데 들숨과 날숨을 통해 한국형 발효과학을 만들어왔다. 술독엔 술익는 냄새, 장독엔 장익는 소리, 김장독엔 김치 익어가는 맛으로 가득하고 어머니는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 소박하다 못해 투박한 저 흑갈색 옹기들이 모여 햇볕을 쬔다. 옹기 속은 깜깜한 암흑같지만 저들끼리 생명을 빚는 춤사위로 가득하다.

한국인의 밥상은 단연 소반이다. 해주반, 나주반, 충주반 등 지역마다 크기와 모양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충주반은 밥상다리가 개다리처럼 생겼다 해서 개다리소반이라도고 부른다. 장독대에서 꺼낸 발효식품을 어머니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먹기 좋게 썰고 다진 뒤 소반위에 올려놓는다. 우리는 그 마음의 소리를 먹으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창조경제팀장

위대한 유산은 멀리 있지 않다. 이처럼 우리 곁에서 버려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모으는 마음과 열정이 위대한 유산을 만든다. 땅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마을과 하천을 건널 수 없다 해도 삶이 각다분할 때 낯선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복되다. 어둠을 어둠으로 보지 않고 그 속에 새로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진정한 문화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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