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자료사진 / 클립아트 코리아

때는 1518년 8월 1일. 조선 조정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부제학(副堤學) 조광조가 일대 혁신 카드를 빼들었기 때문이다. 소격서(昭格署) 혁파를 위해서다. 소격서는 하늘과 별자리, 산천에 복을 빌고 병을 고치게 하며 비를 내리게 기원하는 국가 제사를 관장하는 관서다. 제사는 미신의 성격이 강했다. 조광조는 이 소격서가 유교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확신했다. 당시 중종과 대화를 엮어봤다.

"전하, 조정이나 백성들이 귀신을 따르고, 무당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선비들이 학문에 힘쓰고 대신들이 정치에 온 힘을 다한들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소격서 때문입니다. 소격서 폐지가 시급 합니다" 중종이 입을 열었다. "세종이나 성종 등 성군께서도 없애지 못한 소격서를 과인이 어찌 폐지한단 말이요. 불가하오" 그러나 부제학은 더욱 단호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폐습은 잘못된 것이오니 반드시 없애야 하옵니다. 윤허가 내려질 때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이런 실랑이가 밤새 이어졌다. 밤이 깊어가면서 급기야 "꼬끼오~"하며 우렁찬 새벽 신호탄이 조정을 흔들었다. 결국 중종은 잠을 깨 무릎 끓고 엎드려 있는 조광조를 목격하고 소격서 폐지를 윤허했다. 중종이 닭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채 늦잠을 잤더라면 소격서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연이지만 닭은 역사의 한 줄을 장식한 셈이다.

올해는 닭의 해(丁酉年)다. 닭이 울면 어둠이 물러나고 새벽이 온다.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신령한 동물로 조상들은 여긴다. 마을에 돌림병이 유행하면 닭 피를 대문이나 벽에 바르기도 했다. 어둠을 몰아내고 액운을 쫓아내는 상서로운 가축이다. 지난해는 암울하고 액운이 가득한 한 해였다. 힘들고 답답하고 짜증나고 울화통이 터지는 병신(丙申)년이었다. 동음이의어 병신(病身)년이라서 그랬는가? 기형이거나 기능을 잃은 몸처럼 국가도 기형이 됐고 기능을 잃었다. 만신창이이다. 여기저기서 메스를 들고 암 덩어리를 떼어내겠다며 나섰다. 그러나 아우성치며 분주한 몸짓은 그저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다 똑같은 놈들이기 때문이다. 늘 남 헐뜯기 좋아하고 이기적인,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완장주의와 이여반장이 강한, 그 잘난 정치인들이 국가를 병신으로 만들었다.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를 원망하는가?

백가쟁명의 언론도 어둠을 몰아낼 방법을 찾느라 지져대고 긁어댄다. 그저 변죽만 울릴 뿐이다. 주인 발자국 소리도 알아듣지 못하는 한낱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듣고 볼만한 주장도 과거 지향적이고 단죄 차원에 불과하지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시원하고 깔끔한 정리를 기대하는 백성들은 더욱 혼미하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새해가 밝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아직도 우렁찬 닭 울음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채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답답하고 힘들고 혼란스럽기는 더 심하다. 어둠을 몰아낼 닭은 왜 울지 않는가? 무척이나 닭 울음소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닭이 참으로 많이 죽었다. 몹쓸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돼 죽었다. 조그만 이상이 보이거나 이웃 닭이 병에 걸리면 모조리 땅속에 묻혀야 한다. 이러니 어둠을 몰아낼 닭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힘차게 어둠을 몰아내 빛을 잉태할 닭이 울 수 없다는 얘기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늘 틈만 있으면 머리를 들이대는 정치인들만 살 판 났다. 반면 백성들은 관심과 흥미를 잃었다. 그들의 사치스러운 잔치에 더 이상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다. 아니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내놓고 싶다. 울지 못하는 닭도 슬프고, 어둠에서 헤매는 백성들은 더 슬프다. 알도 주고 고기도 주고 새벽까지 알려주는 닭인데 중병에 걸려 있고, 국민 안위와 국가 유지를 탑재한 대한민국 호(號)는 돛대가 망가져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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