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 수필] 왕관을 쓴 학이 춤을 추더니
[삶 & 수필] 왕관을 쓴 학이 춤을 추더니
  • 중부매일
  • 승인 2017.01.1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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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수필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평소 건강하셨던 어머님이 노환으로 위 천공이 된 데다, 골다공증으로 골반이 내려앉아 꼼짝달싹도 못 하시어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으나 차도가 없어 답답하신지 집으로 가자고 보채셨다. 보다 못한 의사 선생님께서 어차피 회복이 어려우니 집에서 편안히 계시다 가시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집으로 모셔왔다.

어머니는 움직이지는 못하나 정신이 또렷하신 만큼 어떨 때는 며칠씩 곡기를 끊어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한약 및 민간요법 그리고 병원 처방 약을 교대로 쓰며, 적외선 치료기까지 갖은 정성 다해 보살펴도 차도가 없어 난감했다.

많은 사람이 대망의 2000년 새해 첫 해돋이를 남들보다 먼저 보기 위해 동해안, 제주도, 심지어는 해외여행을 가는 등 온 나라가 들썩일 때, 여행은 커녕 어머니 병간호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잦았다.

99년도 마지막 날 밤, TV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너무 높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났다. 지레 겁을 먹고 숨이 차 못 오른다고 하니 주위에서 그래도 올라가야 한다고 재촉을 한다.

할 수 없이 오르기 시작하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무서워 발짝을 뛸 수가 없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있는 힘을 다해 정상에 올랐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밑에서 올려다볼 때는 깎아지른 절벽이라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였는데, 막상 오르니 더기밭처럼 평평한데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새하얀 백설로 덮여 있다. 백설은 하얗다 못해 반짝반짝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산한다. 마치 다이아몬드가 온 산을 뒤덮은 것처럼.

황홀경에 빠져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햇볕이 얼마나 잘 내리쬐면 쌓인 눈이 저렇게 보석처럼 빛날 수가 있을까! 감탄사를 연발하며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왕관을 쓴 커다란 학 여러 마리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내 머리 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학들도 빛깔이 희다 못해 연한 청자색을 띠고 있는데, 얼마나 색이 고운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영롱한 빛깔의 신비스러운 모습에 넋이 나가는 듯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에 어머머! 어머머! 감탄사만 연발하다 잠을 깼다.

잠을 깨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언가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은 예감에 힘도 솟고,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어머니에게 더 극진했다. 우리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조금씩 좋아지셨다. 얼마 후 기적처럼 지팡이 짚고 화장실 출입을 하게 되었다. 감사하고 뿌듯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도 저승길을 걸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앉은뱅이로 기어들어 가면 어떡하느냐고 노심초사하셨는데, 일어설 수 있어 여한이 없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사방이 가로막혀 옴짝달싹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그때 내가 그랬다. 여직원을 대표해서 중요부서에 발탁된 만큼 완벽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밤을 낮 삼아 일했고, 주말에도 밀린 집안일에 특근까지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어머니 병간호 또한 소홀할 수 없었으니 피로가 쌓일 수밖에….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 꿈 이후 거짓말처럼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좋은 일만 가득했다. 어머니의 쾌유, 꿈에 그리던 승진, 문단등단, 컴퓨터 자격증 취득, 포상 등 행운에 행운을 더했다.

행운은 정년퇴직할 때까지 이어졌다. 영전과 승진을 반복하여 나 자신의 영광은 물론 여성공무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 이는 모두 왕관을 쓴 여러 마리의 학이 춤을 추는 길몽 덕이지 싶다.

이난영 수필가

혼돈과 좌절이 가득했던 병신년을 뒤로한 채 정유년의 서막이 열렸다. 내 인생 가장 힘든 시기에 길몽으로 희망을 품었듯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녀 서조(瑞鳥)로 불리는 붉은 닭의 힘찬 울음이 온 나라에 희망의 꽃을 피웠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15세기에 세종대왕, 18세기에 정조대왕 등 3세기에 한 번씩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성군이 탄생했다. 새벽을 알리고 빛의 도래를 예고한다고 하여 태양의 새로 여기는 붉은 닭의 해, 새롭게 대한민국호를 이끌 지도자를 선출하는 해이기도 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 온 국민이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역사에 길이 남을 21세기 대통령 탄생을 기대한다.

# 약력

▶2000년 공우문학, 한맥문학으로 등단 ▶청풍문학회, 청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수필문학회, 한맥문학회 회원 ▶충북수필문학회 부회장 역임 ▶충청북도교육청 재무과장 역임 ▶수필집 '난을 기르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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