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간 황새복원 연구에 몰두했던 박시룡 교원대 교수가 18일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의 춤 길'에 설치된 '박시룡 교수 퇴임기념 타임캡슐' 앞에서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 타임캡슐은 한반도 황새 멸종 이후 복원사업이 처음 진행된 1996년 7월 17일(러시아로부터 황새 1쌍을 분양받아 한국으로 들어온 날)부터 100년 후인 2097년 7월 17일 개봉하게 된다. / 신동빈

20년전인 1996년 8월 12일 취재차 찾았던 음성군 생극면 관성 2리 무수동 마을 주민들은 '황새의 귀환'을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가 같은해 7월 17일에 이어 21일 독일과 러시아에서 새끼 2쌍을 들여 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마침 유기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늘어 교원대에 둥지를 튼 황새가 1년~2년이면 마을 들녘에서 '부활'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반도 마지막 황새가 1983년 7월까지 살았던 무수동 마을주민들은 닭, 오리처럼 마당이며, 개울가 둑방을 드나들며 가축처럼 함께 지냈던 황새를 그리워 했다. 마을에 살았던 부부황새는 전혀 낯을 가리지 않아 눈에 익은 주민들이 주변을 오가더라도 일절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한식구처럼 살았다고 한다. 그랬던 황새부부는 1971년 4월 4일 마을을 찾은 사냥꾼 엽총에 수컷이 목숨을 잃었다. 황새서식을 알린 언론보도 후 3일만 이었다. 마지막 황새는 '과부황새'로 불리며 마을에 12년간 살았다. 새 남편을 데려 오길 기대했던 주민들의 바람과 달리 과부황새는 농약이 든 먹이를 먹고 쓰러졌다. 1983년 이었다.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황새는 무정란만 낳다 1994년 숨졌다. 한국 텃새황새의 멸종 이었다.

1996년 8월 28일 출범한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는 이렇게 멸종된 한반도 황새 복원을 위해 지난 20여년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개체수가 늘어날 때마다 '야생방사 프로젝트'가 손에 잡힐 듯했으나, 녹록지 않았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에서 먹이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첫번째 관문 이었다. 지자체의 관심과 마을주민들의 동의도 필수적 이었다. 결국 충남 예산군 광시면 들녘에 황새가 날개를 편 것은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한지 20년만 이다. 대학 1학년 때 음성 황새의 총격 사망 사실을 접한 후 복원에 눈을 떠 한국 황새복원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박시룡 교수가 엊그제(18일) 정년퇴임에 앞서 고별강연을 했다. 그의 황새복원과 자연방사 성공은 전세계적으로 4번째 이다. '황새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2015년 9월 방사한 암컷 황새가 야생에서 낳은 알을 45년만에 자연부화했던 날을 '인생 최고의 날'로 꼽았다.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황새의 복원은 단순히 멸종 조류의 복원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오염된 자연이 야생 본연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황새가 살 수 있다면 환경문제는 말끔히 정리됐다는 의미이다. 서양에서는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주는 길조로 여긴다. 우리도 천연기념물(199호)로 지정한 황새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더없는 길조이다. '황새'에 헌신한 박 교수의 학문적 열정이 한반도에 곳곳에 닿아 자연과 황새의 복원이라는 결과를 잉태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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