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최용현 변호사·조광복 노무사

시사평론가 최용현(좌) 변호사, 노동인권활동가 조광복(우) 노무사는 반칙·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통적으로 시민의 의사와 욕구를 대변하고 반영할 정치조직으로서의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정치사회적으로 더욱 공고화되고 사회경제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강했다. 오늘의 현실은 어떨까. 엘리트 중심의 정치권력, 정경유착, 재벌위주의 경제체제, 노동에 대한 정치경제적 억압, 사회경제적 불평등까지 근간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심화하고 고착화됐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분출된 국민적 분노는 우리사회의 질적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중부매일은 창간 27주년을 맞아 분권이라는 대의제 속에서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만들기는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주제로 특집 대담을 마련했다. 시사평론가인 최용현 변호사, 노동인권활동가인 조광복 노무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시민의 의사와 욕구를 대변하고 반영할 정치조직으로서의 진보정당 필요성을 말했다. / 편집자

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우리사회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보여준 촛불민심은 그런 점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국민들의 실천 의지로 읽힌다. 이러한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최용현 변호사

▶최용현= 이번 촛불집회는 시민직접행동 또는 거리·광장민주주의라는 우리 민주주의의 특유 패턴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8년 광우병,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등 많다. 거리와 광장에서 시민들의 민주적 열정이 사라진 후 남은 것은 보수정권과 보수적 개혁정권이 정치권력을 주고 받는 패턴의 고착뿐이었다. 민주화 이후 재벌의 시장 장악력은 오히려 강화됐고 노동탄압의 법규와 메커니즘은 여전하며,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됐다. 최근에는 경제적 불평등과 부정의가 교육, 의료, 문화 쪽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조광복= 87년 민주화 이후 국민들은 주권의 상당부분을 권력에 위임해왔다. 참여민주주의를 통해서라기보다 의회를 통한 절차적 민주주의에 양도해왔는데 그것이 완전하게 정착하지 못했다. 특권층에게 더 이상 맡겨둬서는 안된다고 해서 촉발한 것이 촛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사회는 한 번도 정상적인 발전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부역자들을 청산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분단되면서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공고화됐으며, 군사독재까지 겪었다. 우리사회에 내면화되고 잠재된 것들이 너무 공고해서 비정상적인 정권까지 탄생했다. 얼마나 허약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김= 얼마 전 사회학자 엄기호씨는 지금 우리가 '광장의 조(躁)증과 삶의 울(鬱)증'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삶의 영역으로 돌아오면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참으로 낯설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강조하고 있는데.

▶최용현= 시민 개개인은 정치적으로 깨어 있고 참여 욕구도 넘친다. 문제는 시민들이 얼마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조직이 있느냐는 것이다.

보수적 정치사상가들은 어떻게 하면 절대 다수의 민중을 정치경제적으로 배제할 수 있냐를 고민했다. 절대 다수가 집적·집중·누적되지 못하게 한 것도 이때문이다.해법은 바로 그 속에 있다.

2016년 촛불은 절대 다수가 집적할 때 얼마나 큰 정치적 힘을 갖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절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을 대변해 지속적으로 그들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추진할 진보정당의 탄생이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실망하고 절망한 시민들은 언젠가 또 다시 촛불을 들 것이다.

조광복 노무사

▶조광복= 불과 30년 전에 노동자들 모아놓고 노동법 교육하면 잡혀갔다.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있었던 것은 맞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촛불이 굉장히 중요하다. 설령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기득권을 이겨낼 역량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압축돼 있고 강고한 특권층에게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하면 완강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불평등, 적폐청산 등 촛불민심의 핵심 가치를 향후 권력을 잡을 집단에게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김= 현대사회가 대의민주주의를 피할 수 없다고 할 때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와 요구를 전달할 정치 채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채널이 진보정당이라고 하면, 진보와 보수 프레임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공감대 형성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권력을 나눈다는 의미로서의 분권,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는다면.

▶최용현= 현대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시민들이 그나마 평등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역은 정치영역뿐이다. 정치가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정치 없이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기득권세력과 보수 권력은 정치의 무한한 가능성을 회의하게 만들고 정치 자체를 혐오해 참여를 기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권력의 집중에서 나타나는 나쁜 결과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권력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반대권력을 세우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최순실 사태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을 견제하고 통제할 상대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대권력의 내부시스템도 제왕적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공직, 교육 등 제 부문이 조직 내부의 제왕들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 권력 분산 자체가 갖는 민주주의의 효과도 있지만 이를 더욱 공고히 하려면 분산된 권력 자체의 민주화가 있어야 한다.

▶조광복= 현재 선거제도(소선거구제)로는 당분간 진보정당이 어려울 것이다.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은 꼭 집권을 위해서가 아니다. 독일의 경우 사민당이 녹색당과의 연정을 위해 핵 포기 선언을 했다. 녹색당이 연정을 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다. 비록 소수지만 진보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당제도 및 선거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시민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깨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제는 깨어 있는 시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이 있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최장시간이고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고 있다. 기본급이 적어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체제 하에서는 다양한 모임과 다양한 의사소통이 어렵다. 정치의식이 성장하는 것뿐 아니라 삶의 터전, 삶의 기반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또한 권력을 나누는 분권 이전에 재벌권력, 사학권력, 언론권력, 정치권력 등 비정상적인 패권 청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족벌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모든 경영의 위험부담을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에게 전가하고 있다. 분권도 중요하지만 비정상적인 권력을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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