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모 식품의 음료수 광고에 ''빗살무늬 마크를 확인하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하였다. 그 선전문구대로 음료수 병에는 빗살무늬가 새겨져 있다. 6천년전, 한반도에서 생활하던 신석기인들이 질그릇을 만들며 그릇 표면에 새겨넣었던 빗살무늬가 첨단과학시대에 광고문구를 타고 재등장한 것이다.
 빗살무늬토기는 소설로도 부활하였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훈의 데뷔작이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이다. 불과의 싸움을 치르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불 속을 넘나들며 생명체를 건져낸다는 점에서 볼때 불 가마를 들락거리는 빗살토기 제작과정의 또다른 변용(變容)으로 해석된다.
 미 고고학자 사라 넬슨 교수는 한국의 신석기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학자다. 그는 한강유역의 빗살무늬 토기 연구로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도 양양 오산리에 있는 신석기 유적을 세계고고학 사전에 올렸고 이를 주제로 소설까지 썼다.
 한반도의 신석기 문화는 시베리아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진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신석기 유적은 대부분 해안가나 큰 강가에서 발견되고 있다. 서울 암사동, 강원도 양양, 부산 동삼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석기 유적이다.
 충북에서는 10여군데 신석기 유적이 나타나고 있으나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는 도내 각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청원 쌍청리에서는 드물게 토기와 함께 집터가 나왔다.
 만물은 생명체와 무생명체로 구분되고 있다. 흙은 무생명체인듯 싶으나 온갖 생명을 움틔우는 생명의 근원이다. 따라서 6~7천년전, 이땅에서 빚어졌던 빗살무늬 토기는 ''역사의 생명체''이며 토기를 빚고 무늬를 새겨넣던 행위는 여전히 살아있는 생활문화다.
 섭씨 7~8백도에서 토기를 굽고 표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무늬를 새겨 넣었다. 무늬는 나무나 짐승뼈 등으로 토기 표면을 그어나가며 만들었는데 그 도구를 새기개(시문구:施文具)라 부른다. 오늘날로 치면 화필(畵筆)에 해당하는 도구다.
 선사인들이라고 해서 아무런 감각없이 대충 산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미의식이 작용했다. 그래서 토기표면을 빗살무늬로 아름답게 장식했다.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토기를 보면 가는 선으로 섬세한 작업을 하였다. 토기 주둥이 부분은 짧은 사선이 네줄로 돌려있고 몸통 부분에는 물고기뼈 무늬(어골문)를 새겨넣었다. 빗살무늬의 종류는 수도없이 많다. 한옥의 창살을 연상케하는 격자문(格字文)도 있고 번개무늬, 새발자국무늬(조족문)도 있다.
 이제 그러한 무늬가 조형물로 또 부활했다. 강동구 방아다리길과 천호대교 교차지점에 높이 18m의 거대한 ''빗살무늬 조명탑''이 등장했다. 실로 우리만의 신석기 문화가 첨단 정보화시대에 조명탑으로 되살아 났다. 역사는 단순히 어제의 일이 아니다. 역사는 내일을 비추는 조명탑으로 어제의 족적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밝혀주는 백미러, 전조등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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