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자료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의 삶은 지천명을 지나서도 자신을 방기하며 업을 더했고, 수많은 갈등과 번민 속에서 강물처럼 흘러온 것 같다. 기쁨과 영광이 왜 없었겠냐만 나의 능력과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자학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언제나 현명해질 수 있을지,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을지.

새해 벽두부터 산적한 일들 앞에서 뒤척이며 헤매고 있다. 눈 부릅뜨고 앞만 보며 달려가도 부족한데 망설이는 일들이 많아졌다.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가 알찬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며, 생명문화를 상징하는 젓가락콘텐츠는 더 큰 세상을 담아야 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이 마음껏 희망하는 환경을 만들고, 스토리텔링 자원을 발굴하며 특성화하는 일과 이를 위한 여러 개의 정부 공모사업도 준비해야 한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고 했던가.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콘텐츠로 특화해 세계로, 미래로 뻗어가도록 하는 일도 주어진 과업이자 책무다.

해야 할 일은 엄연한데 머뭇거린다. 이럴 때는 길을 나선다. 숲길, 물길, 들길, 골목길….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 나선다. 그 모성적인 풍경이 지친 방랑자에게 삶의 여백을 준다. 나는 전생에 유목민이었을까. 삶이 건조하고 각다분할 때 누구는 달팽이처럼 칩거한다던데 나는 그 때마다 길을 나선다. 그곳에서 채송화 같은 추억도 만나고 망초꽃 같은 슬픔도 만난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있는 삶의 속살을 훔친다. 이런저런 생각과 추억을 떠올리며 나와 공동체와 새로운 세상을 생각하며 수행하듯 말없이 떠난 여행길에서 되돌아온다.

오늘의 화두는 청주정신이다. 청주정신이란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디며 품어온 삶의 양식과 청주만의 DNA를 말한다. 정신세계에서부터 유물, 인물, 문학, 건축, 음악, 미술, 자연 등 형태적 풍경에 이르기까지 감동과 교훈을 주고 더 큰 성장을 허락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정신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 우리 고유의 삶과 멋 속에 담겨있는 DNA를 찾아 시대에 맞는 자산으로 가꾸고 새로운 가치로 창조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진정한 문화란 에디톨로지(Editology)라고 했다. 다양한 콘텐츠를 조화롭게 융합하고 편집하며 창조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도 청주를 대표하는 브랜드와 콘텐츠를 준비하는 태도가 엉성하다. 대한민국 국민이 청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면 아찔하다. 근 20년, 이 동네에서 문화기획자로 일하면서 이토록 중요한 숙제를 풀지 못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내 삶의 의무와 해야 할 일들만 바라보며 허겁지겁 달려온 지난날이 부끄럽다. 이제라도 우리 곁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새로운 미래에 대하여 진지한 성찰과 꿈과 비전을 담아야 한다. 청주를 청주답게 만들기 위한 전략적 사고이자 실천적 의지 말이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만사에 때가 있기 마련이다. 앙드레 지드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삶의 현장에서 사랑할 것, 열정을 가질 것,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갈망했다. 지상의 모든 풍경 앞에서 고뇌하고 여명의 물결과 수정 같은 샘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마음과 존재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나라가 망해도 문화는 살아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청주는 무엇을 가장 먼저 지킬 것인가, 어떻게 보존하고 가꿀 것인가. 지금 청주정신을 찾아 나서자. 역사, 인물, 자연, 건축, 문학, 음악, 미술, 공간…. 그 속에 숨어 있는 보석같은 자산이 무엇인지 금맥을 캐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세상 사람들이 개념적으로,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맨발로 느끼고 온 몸으로 호흡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종대왕은 넓게 경험하고 깊이 파고들면 스스로 귀한 존재가 된다고 했다. '라 그란데 벨레짜', 숭고한 아름다움의 청주를 위해서 가슴 뛰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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