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나이키가 있다면 한국엔 '프로스펙스'가 있다. 프로스펙스는 한때(1981년) 미국 마라톤 전문 월간지 '런너스 월드(Runners World)'로부터 미국 6대 스포츠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스포츠화를 만든 국제상사는 그룹사로 성장해 1980년대 21개 계열사를 두며 재계 서열 7위에 올랐다. 하지만 1985년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됐다. 그룹 해체과정에 많은 비화가 있으나 정치자금이 타 기업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후 30년이 지났지만 대통령의 갑질은 여전하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특검에 의해 구속영장에 청구됐으나 기각됐다.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했다는 발언도 나왔다. 조원동 전청와대경제수석은 최근 서울중앙지법 공판준비기일에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이 부회장이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받은 건 맞지만 협박할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미경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갔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박 대통령은 아직도 70년대식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개발독재시대의 그릇된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에 찍히면 한순간에 훅 간다. 김대중 정권 때는 대우그룹이 해체됐다. 대통령의 말한마디에 기업이 얼어붙는 이유다.

기업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는 비호감도가 55%에 달하지만 취임식 기부금은 1억 달러를 넘겨 역대 최대규모다. 기부금을 내놓은 사람들은 지지자들이 아니라 트럼프와 갈등을 빚었던 보잉 등 5~6개 대기업들이다. 트럼프측은 취임식에 사용하고 남은 금액은 자선재단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것에 대해 소수의 초부유층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권정치의 길을 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막 나가는 트럼프라도 기업의 오너에게 회사에서 나가라고 욱박지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헌법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보복이 두려웠다면 워렌버핏 등 재계의 거물들이 대선과정에서 힐러리를 지원하면서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도 기업의 팔을 비틀기는 했다. 자신과 측근의 치부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념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국민들의 일자리를 위해서다. 보잉을 향해 "42억달러가 넘는 '에어포스원' 제작 비용이 너무 높다"고 비난해 결국 할인 약속을 받아냈고, 일본 도요타의 멕시코 공장 건설 계획을 비판해 이를 미국 내 투자로 돌렸다. 국내 기업 가운데선 현대차그룹이 트럼프 정책에 발맞춰, 향후 5년간 31억달러(3조6천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누렸던 미국의 풍요를 불러오겠다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의 갑질도 국익우선과 사익추구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하지만 권력과 기업의 '딜(거래)'은 결국 금권정치를 낳는다. 국가지도자의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라의 격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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