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일기장을 처음 본 건 5년 전 아버님의 장례식이 지난 며칠 후였다. 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잠시 펼쳐보게 된 일기장을 큰아주버님이 보신다고 가져가시기에 언젠간 나도 보게되리라는 생각에 미루어 두고 있던 것을 며칠 전, 어머님의 부름으로 시댁에 갔다가 안방 책상의 책꽂이에 일기장이 꽂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버님의 낯익은 필체가 생전의 말씀인 듯 한 눈에 다가든다.
 일기장엔 주로 마을 이장으로 참여한 회의 내용과 마을회관 관계 운영비의 내역, 집안의 대소사 메모와 함께 아버님 어머님 두 분의 병원치료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있다. 특히 마음을 끄는 것은 그날그날 어머님의 기분과 건강상태를 메모한 내용이었는데 무뚝뚝하시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아내의 건강상태를 예민하게 관찰하며 걱정하는 자상한 지아비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님의 지병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치매와 함께 합병증이 악화되어 병원에서도 퇴원하시고 집에서 요양을 하실 무렵엔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져 어머님께 짜증을 많이 부리셨다. 내가 조석으로 찾아 뵐 때마다 아버님의 신경질을 토로하시는 어머님이 안스러워 한 번은 아버님께 어머니를 사랑하시느냐 물었다.
 몣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저 바보가 글쎄 모르잖아뀘?하시는 대답에,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한 번이라도 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이후에 어머님께 여쭤보니 멋쩍게 웃으시며 대답을 회피하셨다.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어느 날의 메모를 보며 기어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릫자식에게 남겨주면 후회한다. 재산은 남겨주면 고생하고 대우받지 못한다. 남의 사람과 내 사람을 비교하면 행복하지 못하다. 지금 현재, 이대로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남이 있어야 나도 있다. 그때 좀 더 참을걸. 좀 더 베풀고 살걸. 좀 더 재미있게 살다가 죽을걸.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하자. 이 순간 눈웃음…릮
 신문에서 스크랩한 내용 또한 내게는 충격이었다. 1994년 당시 중부매일의 ''세정유감''을 오려 일기장에 끼워놓으시다니. 박순철, 박종순, 이귀란, 김기원….
 어쩌면 아버님은 저 세상에서도 지금 막내며느리가 쓰고 있는 릫세정유감릮을 스크랩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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