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청주향교 기로연 / 중부매일 DB

다시, 아름다움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어디 사람뿐이던가. 자연이든 예술이든 본질에 가까울수록 아름답다. 간혹 헛것에 현혹되면서 본질이 왜곡되거나 심성이 파괴되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에 가까울수록 평화를 주고 조화를 꾀하며 나를 고양시킨다. 도시의 풍경도 그러하다. 표적을 잃은 궁사처럼 허공을 향해 헛기침을 할 때 신발끈 고쳐 매고 본질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한 마디로 생얼미인이다. 미인앞에 서니 바람도 쉴틈이 없다. 밖에서 보면 거칠고 야성적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분칠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나그네를 긴장케 한다. 1946년에 문을 열면서 매년 100억 개비를 생산하고 수출까지 하며 근현대 한국경제 부흥의 불씨를 지핀 곳이다. 담배농사를 짓는 농부들도,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일하는 노동자도, 주변의 선술집과 야시장 사람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공장이 폐쇄되면서 흉물로, 애물단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였지만 공예비엔날레와 도시재생을 통해 문화를 생산하고 예술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담배는 나의 지적 자양분"이라고 말한 프로이드의 메시지를 생각한다.

손때 묻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공간은 역사를 만들고 사랑을 낳는다는 엄연함을 도시에서 만난다. 바로 성안길과 청주의 근대문화유산이다. 청주읍성에는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이 6개월간 머무르면서 과거시험장소로 사용했던 망선루, 목은 이색이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 대홍수의 죽을 지경에서 목숨을 구해준 수령 900년의 은행나무 압각수, 국보 철당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돌다리 남석교 등이 생생한 역사의 증인이다. 일신여고 주변의 양관에서부터 수동 성공회 성당에 이르기까지 낮고 느림의 미학을 품으며 나그네를 심쿵거리게 하는 근대문화유산 또한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깊은 겨울날 대웅전의 망새에 햇살이 난반사되었다. 묘덕은 마지막 남은 활자 가지쇠를 인쇄틀에 올려놓았다. 한지에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간절함을 담아 인쇄를 하고 쪽물 염색과 능화판 밀랍을 한 표지를 올려놓고 꿰매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백운스님의 말씀이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소리가 쏟아졌다. 햇살 쏟아지는 소리, 새들이 합창하는 소리, 기나긴 여정을 함께했던 장인들의 벅찬 감동의 울림…. 경내는 맑고 향기로움으로 가득했다. 1377년 흥덕사는 그렇게 눈두덩이 시릴 정도로 눈부셨다. 그 빛나는 창조정신을 생각하며 새로운 내일을 빚는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한 죽음을 받는 것을/끝까지 사절하다가/죽음은 인기척을 듣고/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모든 것은 낮아서/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겨울 문의여/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고은 시인은 문의의 겨울을 이렇게 노래했다. 대청호 수몰지역이기에 애틋하고, 드라마 전원일기 촬영지로 정겨우며, 아티스트들의 보금자리이기에 호기심 가득한 곳, 오늘은 문의에서 쉬엄쉬엄 넘어가야겠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누가 뭐래도 청주는 교육의 도시, 생명문화의 도시다. 율곡 이이가 청주목사로 있으면서 만든 서원향약은 유교적 예절과 미풍양속을 진작시키기 위한 규약이었으며, 청주향교는 세종과 세조의 각별한 관심 속에서 수많은 선비와 학자를 배출했다. 한수이남 최초의 사학을 건립하기 위한 형제의 눈물겨운 의지와 국립대를 건립하자며 땅을 내놓고 쌀을 기증하는 등의 시민운동은 청주이기에 가능했다. 소로리볍씨와 가로수길과 무심천, 절멸위기의 두꺼비서식지를 살린 것도 청주 사람들이다.

그래서 청주가 하면 세계가 할 것이고 청주가 하지 못하면 세계 어디에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유란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무기로 구태의연함을 쪼아버리는 작업이다. 송골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철학적 깊이로 성찰하며 천지창조의 심정으로 새 날을 일구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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