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고력을 갖추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해 무리 생활하는 동물이 '사람'이다. 한자어로 '人間'이다. 왜 사람을 '인간'이라 했을까? 단군은 고조선 개국정신으로 '홍익인세지간(弘益人世之間)'을 내걸었다. '널리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다' 언제부턴가 '인세지간'을 '인간'으로 줄여 '홍익인간'이라 했다. '홍익인간'에서 '홍익'이 분리되면서 '인간'은 사람을 뜻하는 명사가 됐다. 고로 인간은 사람과 세상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인간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공간인 세상과 어우러져야 한다.

인간은 특정 관심이나 속성 등의 굴레에서 사회관계를 형성하면 '우리(we)'가 된다. 사전 정의로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 자기와 듣는 사람, 자기와 듣는 사람을 포함한 여러 사람을 칭하는 인칭대명사다. 이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어떤 굴레 속의 다수를 일컫는 관형어로 많이 쓰인다.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 우리 민족 등등. 짐승을 가두는 이차원 공간도 '우리(cage)'이고 '우리'와 '너희'를 구분 짓는 일차원 선 '울타리(fence)도 '우리'다. 순우리말이다. '우리(we)'는 관습, 감정, 신념, 가치, 이론, 법 등 정신적 측면을 공유하며 시공간도 대체적으로 함께 한다. '우리(cage)'와'우리(fence)'도 시공간을 지배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뒬깽은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사회적 사실'이라 했다. 인간은 사회적 사실에 근거해 살 수밖에 없다.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다. 사회적 사실은 강제성과 외재성이 특징으로 앞서 산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이것을 벗어나면 물리, 정신적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강요하는 지침서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정신과 육체에 형태적이던 비 형태적이던 굴레를 씌운 뒤 그 굴레를 넘어서거나 확장하려는 사고와 행위를 철저하게 통제한다. '우리'를 구성하는 신념과 이론 등 여러 요소들은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역발상도, 창조도, 진보도, 건설도, 미래지향도, 혁신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늘 남의 틀을 사고하고 그 틀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도전정신까지 무시한다. 사회는 집합성, 즉 '우리'를 강요한다. 사회는 '우리'의 속성들이 이미 검증되었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나'에 대한 억압과 강요를 서슴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탈출이 성공해도 그 결과를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과연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마당한가? 그렇다면 언제 '나'를 찾겠는가? '우리'를 벗어나 내 의지대로 살 수 없는가? 말이다. 늘 '우리'와 '남'을 보고 살아왔지 '나'를 한번이라도 들여다보고 살아 본 적이 있는가? 과연 이것이 '내 삶'인가 '남의 삶'인가? 이제 '사회보존의 의무'를 가진 '우리'로부터 탈출해 '나 보존의 의무'를 가진 '자신'의 유전자 지도를 그려보자. 여기에는 사회적 사실에 대한 정당성과 가치에 지속적 회의(懷疑)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줄(쵀)탁동시(?啄同時). 병아리가 부화하려면 알속에서 부리로 껍질을 쪼아야 하고 밖에서는 어미도 껍질을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알속의 병아리가 먼저 껍질을 쪼지 않으면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다. 다람쥐는 쳇바퀴가 세상 전부인 줄 안다. 우물 속 개구리는 우물 둘레만큼만 하늘을 본다. 따분한 세상에 따분한지도 모른 채 사는 것이 다람쥐나 개구리만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우리'에 갇혀 '우리' 밖 세상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이제 나를 찾자. '우리(we)'는 '우리(fence)'를 넘어서고, '우리(cage)'의 탈출, 아니 파괴하자.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기존의 틀을 벗어버리고 내 사고와 내 눈의 프레임을 확장하자. 특히 '우리'는 '기득권자와 위정자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만든 무기'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들이 만든 '우리'는 국가와 공동체 발전, 민주주의, 조직의 화합과 유지 등의 명분 아래 '나'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를 넘어서는 자를 단칼로 베어버리는 것이 모든 분야의 세태가 아닌가? 억압이 몸에 배 그 억압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양자(楊子)는 스스로를 위한다는 주장을 취해서, 한 올의 털을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孟子, 盡心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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