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사태] ④ 대안은 뭔가

대형 살포기 방역 현장 / 중부매일 DB

[중부매일 한인섭·김정하 기자] 연례 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는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근본 대책을 마련하려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사사건건 통제하는 방식을 개선해 이른바 '방역 자치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농림부가 시·군까지 쥐락펴락 하는 수직적 지휘체계를 유지할 게 아니라 시·도 권한 위임을 통한 '지역 맞춤형 방역 시스템'을 갖춰야 경쟁력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구제역 긴급행동 지침(SOP)'에 따르면 상황이 발생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긴급방역대책을 수립·시행과 방역행정 조치·관계기관 협조, 기동방역기구 운영 등 총괄 기능을 수행하고, 전국 17개 시·도와 일선 시·군은 발생지역 방역대 설정과 출입통제, 살처분·매몰, 현장 기동조치팀 운영 등 현장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전국 시·도는 동시에 농림부 상황보고와 축산농가 방역 조치(명령), 가축방역기관 조치 요청 등 역할을 수행한다.

구제역 긴급행동 지침은 국무회의를 컨트롤타워로 범정부적 지원대책을 강구하기위해 마련했으나, 광역 시·도는 위기단계별(관심·주의·경계·심각·경보하향) 상황 마다 농림부 '지시'를 받아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광역지자체들은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살처분 범위 등 대책을 농림부에 보고하고, 지침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구제역 발생 사실을 언론에 브리핑하는 것조차 농림부가 통제하고 있다. 이같은 실정 탓에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시·도, 시·군별로 설치된 '방역심의회' 운영 외에는 권한이 전무하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이다.

충북도의회, 보은군 구제역 방문 / 중부매일 DB

충북도는 농림부 지침에 현실과 괴리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지난 5일부터 7개 농장에서 발생한 보은 구제역 대책 과정에서 독자적 대책을 추진했다.

농림부 지침에 따르면 최초 발생한 농가 가축은 모두 살처분하고, 인근에서 발생한 2차, 3차 발생 농가는 증상에 따라 선별적으로 살처분해야 한다.

충북도는 그러나 2차~6차 발생 농가 중 1개 농장을 제외한 5개 농장 한우·젖소는 전량 살처분 했다. 일부 농장의 항체 형성율이 0%로 나오는 등 대체로 낮았고, 농장주 1명이 3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등 감염·확산 우려가 높다고 보고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살처분 범위 등 모든 상황을 농림부에 보고한 후 지침을 받아야하는 실정이라 실제 방역보다 엉뚱한 데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며 "나름의 기준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치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개입도 일정부분 필요하지만, 권한을 위임해 시·도 지사가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밝히고 "지침이 현장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추가로 발생한 보은 구제역 농장에 대한 조치는 농림부와 협의를 거쳐 별도 매뉴얼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충북도 축산위생연구소 관계자는 "지역사정에 정통한 방역관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인사 시스템을 갖춰야 맞춤형·지역밀착형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하고 "'계급'이 전문성의 척도가 되거나, 중앙지침이 '현장상황'을 우선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보은군 탄부면 농가 방역통제 / 중부매일 DB

축산농가의 백신접종 준수를 위한 정부·지자체의 개입 범위를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아 보완책도 필요해 보인다.

축산농 유모씨(52·제천시 금성면)는 "사료 섭취량·우유 생산량 감소 등을 우려한 농장주들이 구입한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공무원 입회 하에 접종을 해야 항체형성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자체의 한 공무원은 "사소한 일조차 공무원들에 의존하고, 전염병이 발생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농민들의 '모럴 해저드'를 야기했다는 지적도 있지 않냐"고 반문하고 "자신의 재산은 스스로 지키려는 자세로 접종과 방역소독에 최선을 다하고, 공무원들은 전문성 있는 지원 조치를 취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밝히는 등 접종 의무화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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