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획]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장기영 광복회 충북지부 사무국장. /신동빈

[중부매일 이완종 기자] "조국, 내 나라를 생각 할 때면 심장이 뜨거워집니다."

장기영(65)씨의 몸에는 세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뜨거운 '애국지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시절 일본군에 맞선 애국지사의 후손이다. 집안은 대대로 미원면의 '지역 유지'로 통할만큼 덕망과 재산 등이 있는 격조 있는 가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발생하며 상황이 크게 변했다.

그의 조부가 일본군에 맞서 독립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조부가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 나이는 29세, 소식을 전해들은 조모가 충격으로 병상에 눕게 됐고 일본군에 모든 재산과 토지를 몰수당하며 가문은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된다.

때문에 장씨의 아버지는 어린나이에 집안을 이끄는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하지만 모든 재산과 토지를 몰수 당한 상태에 독립군의 자녀라는 이유로 핍박받으며 생활고에 시달린다. 수 년 뒤 광복이 찾아왔지만 한번 기울어버린 가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애국지사의 후손이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조부의 투신으로 어려서부터 가장역할을 한 아버지는 평생을 여유 없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쉴 새 없이 움직인 아버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번 기울어버린 가세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기억속의 아버지는 삶과 외롭게 싸우는 독립 투사 같았습니다."

더욱이 그 영향은 손자인 장기영씨에게 까지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평생을 고생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소식. 그는 애국지사의 후손이라는 점을 원망하기도 했다.

"평생을 고생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애국지사의 후손이라는 것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애국지사의 후손'이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는 것을 이후에 지인에게 듣게 됐죠. 눈물이 하염없이 났지만 아버지가 지키려고 했던 것 은 조국, 더 나아가 우리 가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아버지의 혼을 이어받기로 정했습니다."

현재 장기영씨는 33년간의 교직생활을 정년으로 마친 뒤 현재는 광복회 충북지부에서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애국지사들과 후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국을 응원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왜곡, 국정교과서 문제, 청년들의 역사인식 부족 등의 확산되자 눈시울이 붉혀져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애국지사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들이 잊혀 지고 왜곡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광복회 활동을 하며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에 따라 역사교육을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과거 애국지사들의 피와 눈물로 세운 나라의 의미와 본질을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광복회 충북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독립유공서훈자는 1만3천여 명으로 그 후손인 광복회원은 6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충북은 600여 명의 독립유공서훈자와 200여 명의 광복회원이 있다. 이들은 가장의 독립운동 투신으로 생긴 결핍된 생활은 자녀대를 넘어 손자대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독립투사들의 혼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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