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멎고 햇볕이 반짝 나는 아침 우리 부부는 서둘러 겨울 산행을 준비한다. 속리산 가는 길은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 뽀송뽀송하여 경쾌하다. 겨울산은 더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며 예비로 하나 챙겨둔 아이젠은 가져오지 않아도 될 뻔했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끄러운 얼음판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정상에나 가야 아이젠을 구할 수 있는데 큰일이다 싶어서 우선 한 짝이라도 나누어 신을까 하는데, 겨울 등산복으로 무장한 등산객이 아이젠 두 벌을 내주면서 산 입구에 허름한 토종닭 집으로 갖다 달라고 한다. 예전 것 같이 손이 많이 가지 않고 발에 착 붙는 느낌이 좋다. 예쁜 사람이랑 같이 다니니 다 이런 덕을 보는 거라는 등 농담을 주고받으며 문장대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안보이던 주목 세 그루가 명찰을 달고 서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개신동 사는 분이 속리산 등반 100회를 기념하는 식수를 한 것이었다. 우리도 속리산을 자주 찾는지라 지금까지 온 것의 세 배는 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문장대 정상에서 청정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바라보는 도명산, 낙영산은 하얀 눈과 어울려 너무도 아름다웠다. 군데군데 설화가 피어있는 푸른 솔은 어느 화가가 저렇게 표현할 수 있으랴 싶게 고고하고,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바위들은 어찌나 조화가 잘 되는지 일부러 운반해 놓은 것 같았다. 감상에 젖어 있던 우리는 아이젠을 생각하고 바삐 토종닭 집을 찾았으나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근처에 다른 집이 있나 물으며 초입부터 몇 바퀴를 돈 뒤에야 그 분은 이미 식사를 하고 관광버스로 떠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미리 전화 번호라도 알아두었더라면 돌려줄 수 있었을 것을 하며 안타까워하는 내게, 남편은 좋은 일한 분이니 복 받을 거라며 대신 더 많은 선행을 베풀라고 한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어두운 일이 많아도 낯선 사람을 도와주는 그런 분들이 있으니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밝은 마음이 된다. 그 말이 맞는다는 듯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 오창고등학교 행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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