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조가 산업화 정보화로 치닫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전통산업은 역시 농업에 있다. 농업은 그 속성상 공동체를 형성할 수 밖에 없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동시 다발적인 인력과 협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농촌사회에서 향약이나 두렛일이 존재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의 향약은 북송(北宋) 여씨(呂氏)가문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모델로 퇴계 이황이 만든 예안향약(禮安鄕約)과 율곡 이이가 만든 서원향약(西原鄕約)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이 율곡 선생은 선조4년(1571), 36세의 나이로 청주목사를 1년 정도 지냈다. 청주목사를 지내면서 만든 것이 바로 서원향약인데 이 향약은 예안향약과 양대산맥을 이루며 각 지방 실정에 맞게 가감되었다.
 향약의 기본 덕목은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이라는 4대 덕목으로 이점에 있어서는 전국이 거의 같다.
 서원향약에서는 선악(善惡) 두 편을 만들어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였다. 이에대한 세칙도 만들었는데 청주 중앙공원의 ''서원향약비''에는 그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선에 관한 내용으로는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 가정을 다스리는 일 등을 꼽았고, 악과 관련된 사항으로는 불효, 불우, 부부간의 무분별 등을 적시하였다.
 괴산군 청천면 고성리에서는 부부싸움을 할 경우 해당 가정으로부터 벌금을 받는 이색 ''싸움계''를 운영한다고 한다. 싸움의 경중에 따라 5만원~10만원의 벌금을 받아 기금으로 적립하여 봉사활동에 사용한다니 바로 서원향약에서 제시한 ''과실상규''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부부싸움이 그칠날 없는 도시생활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이색적''으로 해석될지 모르나 화목하지 않으면 농경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농촌에서는 당연한 현상이요, 옛 것의 슬기로움을 간직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아닐 수 없다.
 결혼식 주례사에서 흔히 등장하듯 부부란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될 때 까지'' 함께 살아가는 인생의 동반자다. 부부는 음양의 이치에 따라 화합하는 상생의 존재이지 서로 충돌하는 상치의 관계가 아니다.
 옛 말에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창부수(夫唱婦隨)라든지, 백년해로(白年偕老) 등 수많은 고사성어가 말해주듯 부부란 사랑과 생명의 원천이다.
 사이좋은 부부를 가리켜 흔히 ''금슬이 좋다''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악기인 거문고(琴)와 비파(瑟)의 화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살다보면 짜증나는 일도 있지만 부부싸움을 칼로 물베기요, 미워도 다시한번이다.
 ''아내의 키가 작으면 남편쪽에서 키를 줄여라''라는 탈무드의 경구를 교훈 삼는다면 굳이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R 버턴은 ''선량한 남편은 선량한 아내를 만든다''고 했다. 부부싸움 끝에 툭하면 가출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각박한 세태에 고성리의 싸움계가 사표(師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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