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된 충북지역 문화예술인들이 11월 29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 22조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등의 조항을 근거로 국가에 대한 소송 및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마련에 나설 것을 밝히고 있다./신동빈

박근혜 정권의 작품(?) 중 하나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충북 인사는 54명이다. 이 중 28명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청주지방법원에 접수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공소제기로 시작 된 형사재판과 별개로 민사재판 막이 오른 것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블랙리스트는 7천449명에 달하고, 특검 수사 과정에서는 9천473명으로 늘었다. 소송 결과에 따라 이들이 소장에 명단을 올리면 파문은 부챗살처럼 퍼지는 양상이 될 게 뻔하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 재직 시절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리스트는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과 2015년 5월 1일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594명이 일찌감치 명단에 올랐다. '검은 손'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6천517명과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지지를 선언한 1천608명도 빼놓지 않았다.

'블랙리스트'는 특정집단에 대한 '이익배제' 조치이다. '적'으로 분류한 이들에 대한 가차없는 탄압과 혐오는 유신정권, 군사정권이 전유물처럼 즐겨 쓰던 수법이다. 박근혜 정권은 그 '망령'의 유혹을 받았는지, 적대감을 '행정'으로 구체화 했다. 김기춘의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은 명단을 작성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실행 역할을 했다. 이런 결과로 소송에 참여한 일부 충북 문화·예술인들은 1천만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았던 전통창작산실시범공연, 사회복지시설순회사업, 작가장터 개설지원 사업 등에서 배제됐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블랙'외에 '화이트리스트'도 만들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사회협력 예산으로 NGO(비정부기구)를 지원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정부 시위에 등장하곤 했던 어버이연합 일 게다.

보수와 진보, 여·야, 지역으로 갈린 사회통합에 나서도 못자랄 판에 밀실에서 편가르기와 혐오, 차별에 골몰했던 이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만으로도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이 구속기소 됐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등 5명도 마찬가지이다.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에 대한 공소 유지 역할을 할 검찰이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 상대 소송을 지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 상대 소송은 형식적으로는 법무부 일이지만, 따지자면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소송을 지휘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위협한 행위가 어떻게 재단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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