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 6. 미얀마 바간의 일몰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해돋이를 보고 싶다면, 미얀마 바간으로

바간사원 / 후후커플 제공

미얀마 바간에 오게 된 건, 신비로울만치 아름다운 사진 한 장을 보고 나서였다. 수 많은 파고다들이 펼쳐진 장관 속에 떠오르는 황금빛 태양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바간은 미얀마를 여행하는데 절대 빠지지 않는 여행지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중 하나로, 미얀마 불교 연구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바간에 머무는 3일간 일출과 일몰은 꼭 보기로 했다. 아침 5시반, 일출을 보기위해 바간 지역에서 가장 크고 높다는 쉐산도 파고다에 올랐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그 일출을 드디어 보는건가. 과연 가장 높은 파고다에서 가장 멋진 일출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 저마다 삼각대와 크고 무거운 렌즈를 장착한 채 줄지어 있었고, 그들 뒤론 수십 명의 여행객들이 저마다 카메라와 휴대폰을 들고 까치발까지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사이에 치여 동쪽을 향했다. 이래서 제대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칠흑같이 까만 어둠 속에서 조용히 파고다들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해가 뜨길 다들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데, 날이 흐려서인지 해는 뜨지 않고 세상은 밝아지고 있었다. 해는 못 봤지만, 멋진 장관을 보았으니 되었다. 바간에 와서 처음 본 파고다들은,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신비로웠으니까. 다만, 가끔 너무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은 여행의 감동을 반감시킨다. 우리 둘다 사람이 너무 많은 관광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쉐산도 파고다는 바간에서 가장 큰 파고다라지만 내가 파고다에 올랐는지 전망대에 올랐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저녁엔 다른 파고다에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시끄러운 뷰포인트보단 이름없지만 조용한 파고다가 더 좋으니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하나 둘씩 떠오르는 열기구를 보았다. 마치 작은 물방울들이 흩뿌려진 것 같이 예뻐서 우리는 길 위에 한참 서 있었다. 여긴, 참 어딜 둘러보나 예쁘구나.

바간을 둘러보기위해 전기 스쿠터인 E-bike를 빌렸다. 바간에는 냥우, 올드바간, 뉴바간으로 나뉘는데, 우리 숙소는 여행자들이 주로 머무는 냥우 지역에 있었다. 올드 바간은 파고다들을 비롯한 고대 유적들이 밀집된 지역이고, 올드바간이 문화유적 보존 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사람들이 이주된 곳은 뉴 바간이라 불린다. 우리는 E-bike로 뉴바간부터 올드바간까지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뉴바간은 다른 바간 지역들에 비해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의 마을이었다. 주거지역이다보니 크게 볼거리는 없었다.

바간의 일몰 / 후후커플 제공
바간의 일몰 / 후후커플 제공

그리고 올드바간. '바간은 곧 파고다'라는 공식이 있을만큼 파고다가 많다. 이름없는 파고다들까지 너무 많아 어디부터 가야할지도 몰랐다. 우린 유명한 사원들보다는 그냥 발닿는대로 가고 싶은 곳에 들어갔다. 그러다 일몰을 볼만한 작은 파고다를 찾았다. 역시, 바간에선 어디든지 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매력적이다.

아침에 일출을 못봤던 아쉬움을 한번에 날려준 일몰. 하늘이 빛의 향연을 뽐내며 서서히 노랗고 빨갛게 변해가는 걸 우린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숨막히는 장면 앞에선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먹먹한 그런 장면이었다. 가슴 속에서도 노랗고 빨간 물감이 팍 하고 터져버리는 느낌이랄까. 우리 옆에 앉아있던 한 여자는 무슨 기억을 떠올린건지, 일몰을 보며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몰 하나만으로도 바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바간, 바간 하는지 이젠, 알 것 같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일출을 보는 걸로 아침을 시작했다. 이튿날엔 바간에서 2시간 떨어진 뽀빠산에 가기로 했다. 뽀빠산은 미얀마 전통신앙인 '낫' 신앙의 본거지로, 산 정상엔 37개의 낫 정령을 모시는 사원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의 대부분은 불교를 믿고 있지만, 낫 신앙은 억울하거나 슬프게 죽은 정령들을 사원에 모셔두어 그들을 잘 보살피면 그들의 보호를 받고, 그들을 보살피지 못하면 해를 당한다고 믿는다. 여행객들에겐 야생원숭이들의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뽀빠산을 오르는 내내 수십 마리의 야생 원숭이들이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원숭이들은 여행자들의 휴대폰이나 카메라, 모자 등을 가져가기도 해서, 왠만하면 원숭이들을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올라가는 게 좋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오빠와 나는 벌벌 떨면서 계단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황금색 파고다를 중심으로 정령들을 모셔둔 사원이 보였다. 벽에는 사원에 기부한사람들의 명단이 적혀있었는데, 우연히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2015년 <만국유람기> 촬영차 이 곳을 다녀갔다는 개그맨 양상국 씨였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뽀빠산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뽀빠산에 와서도 일몰을 기다렸다. 일몰은 어디서나, 언제든 예쁘다. 해가 저무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숙연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산을 내려가려는데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이 갑자기 미친듯이 끼익 끼익 소리내며 떼로 몰려왔다. 알고보니 원숭이들의 저녁시간. 그날 제를 지냈던 바나나를 원숭이들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같이 올라왔던 영국인 부부랑 한 줄로 원숭이들을 피해가며 조심조심 산을 내려왔다.

미얀마에서는 불교만 믿는 줄 알았는데, 미얀마의 전통신앙인 낫 신앙의 본거지까지 다녀오다니.

멀고 낯선 나라였던 미얀마가 조금 가깝게 느껴졌다.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선, 많이 알려진 것 말고도 더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게 있다. 우리에겐 뽀빠산이 그런 곳이었다. 뻔한 관광지가 아니여서 더 좋았다. 앞으로 바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알려지길 기대해본다. 그렇게 우리는 바간에 있는 내내 일출로 하루를 시작해 일몰로 하루를 마감했다. 딱히 무얼 할 건 없지만, 바간에 있는 동안 우리는 어린 왕자가 되어 해가 뜨고 지는 걸 한없이 바라보았다. 해가 뜨고 질 때 하늘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이 수천 개의 파고다에 비치는 게 너무나 황홀했던 곳. / 정리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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