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김민정 수필가

양산 원동매화 / 뉴시스

3월의 햇살이 더 없이 상쾌하다.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이 아직은 쌀쌀하지만 그다지 싫지 않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냉이가 색깔을 감추고 코끝으로 먼저 찾아온 봄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주었다.

봄볕을 벗 삼아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자 가장 먼저 당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둥치에 셋집을 들인 까치들이 먼저 반긴다. 이곳 단양 금수산은 화려했던 지난계절을 다시 찾기 위해 생기를 넣느라 봄바람이 살갑게 불어댔다. 봄에는 새싹을 키우고, 여름에는 풀숲을 하늘에 담고, 가을에는 넉넉한 달빛을 안으며, 겨울에는 뻔히 없는 줄 알면서도 토끼몰이를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추위를 감쌌다. 금수산 동쪽자락은 당산나무와 당집의 병풍이 되어준다. 당집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다. 당산나무의 위엄과 산을 기릴 줄 아는 마을 사람들에게 바치는 경의다. 수천 년 전부터 길을 다졌을 산객의 걸음에 맞춰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며 한 사람을 떠올린다.

퇴계 선생은 1548년 1월 군수가 되어 단양 땅을 밟는다. 당시 48세였던 선생은 이태 전에 부인과 사별했고, 부임한지 한 달 만에 둘째 아들을 잃었다. 이 무렵 '두향'이라는 기생을 만났다.

일찍 부모를 잃고 퇴기한 수양모 밑에서 자라 관기가 된 16세인 기생이었다. 그녀 역시 결혼 석 달 만에 남편을 잃고 다시 관기가 된 후였다. 시와 그림을 좋아하고 거문고를 잘 탔던 두향은 퇴계의 인품과 학덕에 반한다. 사모하는 마음을 전했으나 선생은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다.

그러나 매화를 유달리 좋아한 선생은 두향의 매화나무를 받고 마음을 열었다. 매화가 맺어준 두 사람의 사랑은 매향처럼 깊어갔다. 그러나 선생이 풍기군수로 옮기면서 둘의 사랑은 열 달도 안 되어 끝이 났다. 너무도 짧았다. 남한 강가에 움막을 치고 선생이 보내준 물을 정화수로 치성을 올리며 그리워했다. 두향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관기를 떠나 수절했다. 선생의 임종 소식을 듣고는 도산서원까지 달려가 먼발치에서 절을 올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향의 나이 40세였다.

선생의 제자 이덕홍의 기록에 따르면, 선생이 세상을 떠나던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매화에 물을 주어라' 고 당부했다. 그 화분은 두향이 선생과 이별 할 때 선물한 매화 분이었다. 두 사람에게 매화는 삶의 의미와 생명체로 경외심마저 깃들어 서로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소설가 정비석이 쓴 '명기열전'에 퇴계 문중으로부터 듣고 실린 이야기이다. 두향이 기생이었든, 선생이 대유학자였든 두 사람의 성숙한 두 인격체의 만남이었다.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오늘날의 척박한 사랑 앞에 두 사람의 사랑이 촉촉하게 적셔준다.

미녀봉에서 내려서는 산길에 봄을 알리는 매화꽃이 눈인사를 건넨다. 꽃의 여린 웃음은 호수 속처럼 맑다.

김민정 수필가

어릴 적 뒤꼍에 연분홍 겹매화 꽃나무가 있었다. 뒤꼍에는 봄소식을 전할 전령들이 모여 있었다. 매화, 개나리. 산수유. 골단초, 그 중 나의마음을 사로잡는 꽃은 단연 연분홍 겹매화꽃이었다. 겨울동안 닫아 놓았던 대청 문을 활짝 여는 순간 매화꽃아 함빡 핀 얼굴로 다가와 봄을 전해주었다. 이제 가도 볼 수 없는 그 꽃이 마음 시리도록 생각이 날 때면 이렇게 인연을 찾아다닌다. 그리운 꽃잎이 봄바람에 숨어 오지 않을까, 봄비 속에서 오지 않을까, 이름 없는 풀숲에서 오지 않을까, 찾아 헤매다 오늘 금수산 퇴계의 체취 속에서 만났다.

고결한 기품과 곧은 마음으로 선비들이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두향과 퇴계의 애뜻한 사랑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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