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농협 안성교육원 교수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휴학 중인 딸이 남미여행 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해 10월 말쯤이었다. 남미여행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우리 부부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평소 "건강을 해치는 일이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면 경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소신을 믿고 딸의 남미 여행을 허락하는 통 큰 결정을 했다. 딸은 뜻밖의 흔쾌한 승낙이 믿기지 않았던지 여행지를 남해안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물어왔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로 얻은 남미 자유여행권이 부모의 변심으로 박탈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딸은 재빠르게 항공권을 예매했고, 딸 혼자 떠나는 남미배낭여행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딸은 떠나기 한 달 전부터 남미 여행 일정을 짜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볼리비아 입국을 위해 비자도 받고 황열병 예방접종도 하며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7개국을 여행하는 46일간의 일정을 혼자 짰다. 가볼만한 명소 찾기, 숙소 예약 등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새로운 여행의 설렘이 막막함과 힘듦을 이겨내게 해줬다고 한다. 출발을 며칠 앞두고 딸은 '여행의 기대감으로 마음이 간지럽다'고 했다. 딸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멋진 인생정원을 꿈꾸며 지난 해 11월 말 남미 자유여행에 도전장을 내고 출발했다.

여행하며 딸은 여행지의 멋지고 색다른 풍경을 담은 사진으로 매일매일 무사함과 흥미진진함을 전해왔다. 세상의 끝 남미 최남단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보낸 딸의 손 편지를 받는 감동은 벅찼다. 남미에서의 하루하루를 짜릿한 즐거움으로 전해오던 딸이 다급한 구조요청을 해온 건 귀국을 닷새 앞두고였다.

'캐리어가 사라졌어요. 저녁 문 닫기 전에 뭐든 사려면 돈이 필요해요.' 황망해하는 딸의 문자에 급하게 돈을 부쳐준 후 우리 부부는 딸의 마음을 다독였다. 핸드폰, 카메라, 여권 등 귀중품이 든 백팩을 잃지는 않았다는 말에 안도하며 '불행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니 고맙네.' 했고, '브라질 입국할 때 찾을 짐이 없어 가장 먼저 나오겠다.'거나, '찐한 추억 하나를 더했다'며 속상해하는 딸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날 딸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자유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하는 맛이다."라는 글과 브라질 느낌이 물씬 나는 배꼽티를 입고 리우데자네이루의 명물 예수상 앞에서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며 우리 부부의 걱정도 진정되었다.

여행은 여행지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를 알고 떠나는 것 못지않게 여행 중에 경험한 에피소드를 정리하는 작업도 소중하다. 요즘 딸은 남미여행의 체험기를 블로그에 올리기 바쁘다. 신문사 인턴 근무 경험 덕분인지 글 솜씨가 제법이다. 남미 여행기를 책으로 출판해 주겠다는 약속이 부담은 되지만 기분 좋다. 여행은 삶을 이끄는 에너지원임이 분명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역사를 지닌 남미는 아직도 스페인어를 많이 쓰고 있어 스페인어를 못하는 딸이 여행하면서 불편을 겪은 모양이다. 며칠 전 딸이 "스페인어 학원 다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딸이 대견하다.

이종완 교수

작가 한비야는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고 말한다. 남미 자유여행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젊은 날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 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남은 인생을 '시도해라. 세상이 움직인다. 하다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마음으로 채우길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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