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필자가 막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하기 위하여 수차례 입사지원을 하였으나,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탈락의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여자(성별)'라는 요소가 원인일 수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이후 면접을 보면서 면접관에게 "일단 뽑아주세요. 만약 제가 남자보다 부족하거나, 일을 소홀히 한다고 동료에게 느껴지게 한다면 언제라도 제 발로 나가겠습니다"라는 말까지 한 이후에야 채용이 되었다. 어렵게 직장을 얻었기 때문에 "못 하겠다. 힘들다"는 표현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신입사원 연수기간 동안에는 여자라서 약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남자 동기들을 부축하면서 마라톤을 뛰었고, 현업부서에 배치된 이후에는 남들이 퇴근한 이후 매일 늦은 시간까지도 회사에 남아 주어진 업무를 하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신입사원으로서 커피를 타는 심부름, 회의 준비, 각종 잔심부름 등 표시나지 않는 잡무도 기꺼이 해야만 했다.

직장 생활 중 필자를 힘들게 한 것은 과중한 업무도, 잡무도 결코 아니었다. 당시 '저 선배처럼 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필자를 가장 힘들게 했었다. 물론 '유리천장을 뚫은 이 시대의 여성들'이 언론에 종종 보도되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비슷한 직급의 여자선배들도 많았지만, 실제로 회사 내에는 여자 임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소수에 불과했던 여자선배들도 대부분 '아이 때문에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필자 역시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언젠가 임원이 될 수 있을까"라는 깊은 회의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임원에 연연한것이 다소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유리천장을 뚫은 이 시대의 여성이 되고 싶었다.

송무변호사로 전업을 한 후 딱히 여자변호사라는 이유로 드러내놓고 차별받는 경우는 극히 적어졌다. 하지만 오랜 직장생활에서 생긴 습관 탓인지, 필자는 지금도 몸이 아프거나 집안 일이 있어도 일단 주어진 일부터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며, 때로는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에서 내가?'라는 불만을 마음에 품은 채 일을 하곤 한다.

필자는 최근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책을 읽었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는 두 여주인공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책이다. 필자는 책을 읽은 후 범죄라고 표현해야 마땅한 일들이 '가부장적'이라는 표현으로 용인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영 변호사

필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남녀 차별없이 교육을 받았고, 직장에 입사해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더 나아가 취직 후에는 남녀 차별없는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최소한 일단 (유리)천장까지 올라갈 사다리 정도는 제도적으로 지켜주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필자는 행여 유리천장을 있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깨보려 한다. 비록 유리천장을 시원하게 깨진 못하더라도 내 뒤를 따라 오르고 있는 후배들이라도 좀 더 쉽게 유리천장을 깰 수 있도록 실금 정도는 만들어 놓을 수 있는 '롤모델'이 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