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하윤 대전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주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조를 유지한 나라이다. 주 문왕(文王)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주변의 변방 국가들과 연합하여 은나라의 폭군인 주왕(紂王)을 물리친다. 무왕이 천하를 차지하게 되자 주변국가에서는 온갖 공물을 바치면서 무왕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하였다. 그중 여(旅)나라에서는 특산품인 오(獒)라는 개를 바쳤는데, 이 개는 넉 자나 되는 크기에 사람의 말도 잘 알아들어서 무왕이 특히 애지중지하였다. 이를 보고 두려운 마음에 소공(召公) 석(奭)이라는 신하가 무왕에게 경계하는 글을 올렸다. 소공은 무왕을 도운 3대 공신으로, 백성들에게 인덕(仁德)의 정치를 펼친 인물로 평가받는 신하였다.

소공이 무왕에게 아뢰기를, "사소한 일에 신중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아홉 길이나 되는 높은 산을 만드는데 흙 한 삼태기가 없어 공을 헛되이 해서는 안됩니다"라면서 개에 빠져서 정치를 소홀히 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이는 《서경》,〈여오〉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여기서 유래한 성어가 '공휴일궤'이다.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산을 이루지 못하듯이 어렵게 쌓아올린 무왕의 공적이 개 한 마리로 인해 모두 헛된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논어',〈자한〉편에도 보이는데, 공자는 학문하는 자세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학문도 산을 이루는 것처럼 나아가고 중지하는 것은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학문하는 자들이 스스로 힘써 쉬지 않고 나아간다면 많은 것을 이루지만, 중도에 포기하면 지난날의 공력(功力) 또한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그러니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여 산을 이루지 못해도 내가 안한 것이요, 평지에 한 삼태기의 흙을 부어 산을 쌓기 시작한 것도 내가 시작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나아가고 그만두는 학문의 모든 일이 모두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니, 시작한 일은 끝까지 마무리하는 유시유종(有始有終)의 미와 함께 그 주체가 바로 '나'라야 한다는 것이다.

예부터 학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성현들의 말씀으로 전해져 왔다. 수많은 경전에서 학문하는 방법과 즐거움을 말하고 있고, 조선 사대부들의 삶 속에는 그 목적과 방법도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아무리 많은 학문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어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서 끝까지 해내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학문의 9부 능선을 넘었어도 마지막 노력이 부족했다면 그간의 과정도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화룡점정을 장식할 마지막 한 땀, 한 삼태기의 가치는 앞에서 이룬 과정들 전부와 비교해도 더욱 큰 값어치를 매길 수 있다. 인생 성패의 기준이 마지막 한 삼태기로 판가름 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3월의 대한민국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으로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젊음의 캠퍼스에는 봄의 전령사들이 봄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20대 청춘들의 앞날도 춘풍에 흔들리는 봄 햇살 같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경제 붕괴를 예고하는 여러 적신호들이 나타나는데다가 반년 동안 지속된 국정농단 사태로 우리의 국가 성장 동력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이다. 최악의 실업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졸업=실업'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졸업시즌인 2월이 지나면 매스컴은 매년 올해가 최악의 실업률이라는 암담한 소식을 전한다. 실업률이 또 사상 최고를 찍었다면서 사회에 나가야 할 졸업생들은 졸업증서가 아닌 '실업증서'를 받는 현실이라고도 꼬집는다.

김하윤 교수

신학기는 설렘을 품은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이 된다. 우리나라 안팎의 여러 지표들이 암울한 현실을 대변할지라도, 청춘들이 주눅들 필요는 없다. 젊음이라는 가장 큰 무기가 있지 않던가. 청춘이 가야 할 학문의 길은 다른 방법이 없다. 편법도 정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청춘들이 가는 길이 곧 답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을 나르고 나서 흘린 땀을 닦아내는 멋진 청춘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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