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도서관 앞의 목련이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일보직전이다.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이다. 희고 올곧은 자태로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모습을 상상하니 깨끗하고 고귀한 이미지랑 딱 맞는다. 또 이렇게 '봄이 왔구나!' 느낀다.

우리는 종종 깨끗한 이미지를 쌓아온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를 봐왔다. 그로 인해 인기의 하락을 겪기도 하고 대중이 실망하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명연설가로 통하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얼마 전 고별연설에서도 "Yes, we can!"이라는 외친 뒤 "Yes, we did!" 라는 말로 마무리하며,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로 고별 연설을 마쳤다. 말을 잘하기도 하지만, 말 속에 청중의 마음에 와 닿는 따뜻함이 있어 오바마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는 퇴임 후에도 견고하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는 그 만큼 중요하고 쉽지 않다.

말의 중요함을 느낄 때가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이다. 위로의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머릿속은 수백 가지 단어인데 첫말을 뱉어내기가 천근만근 조심스럽다. '언어의 온도'란 에세이의 저자인 이기주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 한마디의 값어치와 무게가 어마어마하다고 전한다. 병원에서의 말 한마디가 의술이 될 수 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통해 절박한 상황에서 눈과 귀로 받아들이는 언어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마음 깊숙이 퍼져 나간다고 한다. 책에서 저자는 말과 글, 언어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말한다.

철이 없던 시절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었던 적이 있다. 잘되라고 해준 말인데 그 때는 차라리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뒤 늦은 후회를 하기도 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말의 온도차는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말이란 가끔은 내뱉기보다는 입에 담아 두는 게 현명한 경우도 있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과 관련된 옛사람들의 생각을 보더라도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은 아닌 것이다.

아이들의 언어는 정말로 솔직하다. 얼마 전 딸이 엄마가 하는 나쁜 말과 좋은 말에 대해서 나열했는데 뜨끔해졌다. 내가 따뜻한 말을 하면 뜨끈한 말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아들에게 엄마가 사랑한다 했더니 아들은 "나도 엄마 사랑해요. 뽀뽀"라며 뽀뽀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다. 주말에는 이모가 두 조카와 놀아주려고 놀러왔다. 몇 시간쯤 아이들과 놀다보면 녹초가 된다. 이때 딸이 귓속에 대고 속삭이는 말 "이모와 함께한 시간은 즐거운 시간". 귀엽고 사랑스럽다. 여섯 살 아이가 이모에게 해주는 솔직담백한 말은 이모에 대한 사랑을 담기에 충분한 14자의 말이다. 이모는 그 말 한마디에 몸이 피곤한 걸 일정부분 잊었을 것이다.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우리의 말 온도는 어느 정도 선에 있을까. 가끔은 말이 안 통해 답답하기도 하고, 울분에 찰 때도 있고, 사소한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차갑고 날선 말보다는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목련이 피는 이 봄 우리 삶을 좀 더 기분 좋고 활기차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교가 섞인 달변일 필요는 없다. 말에 진심을 담는 것, 그건 기교보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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