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자' 이상주 중원대 교수 추가 서체분석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그날이 목요일이었어요. 2010년 9월 2일 목요일날, 수업을 끝내고 왔는데 옆에 있는 교수가 남권희 교수가 직지보다 138년 앞선 증도가자를 발표했다고 하더라구요. 저녁 때 TV뉴스를 보니 남 교수가 자기의 손바닥을 겹쳐보이면서 증도가자와 번각본 증도가가 일치한다고 했는데, 활자와 글자를 보니 내 눈에는 뭔가 직감적으로 달라보이더라구요."

한문학자인 이상주(64) 중원대 한국학과 교수는 '내가 잘못 봤나'하며 그날 저녁을 먹고 다시 서체를 살펴보니 삼척동자가 봐도 달랐다. "야... 이거 어떻게 된거냐. 대 서지학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하며 혼자 왔다갔다 하다가 서체비교에 들어갔다.

한국한문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일찌기 '박학다식'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 문학·역사·철학(문사철)을 통달하기 위해 대학 때부터 한자 1만자 외우기는 물론 한시·탁본, 시조가사 번역에 몰두해 왔기 때문에 한문 해석이나 기본적인 서법이나 붓을 놀림을 알 수 있는 운필법에 대한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문사철을 익히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학문을 할 수 없다는, 다시말해 학자는 전공을 떠나 기본학문을 통섭하고 거기에 시대적인 감각과 역사를 더해 그것을 현실에 반영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이 평소 신념이었다.

"제가 한문학 전공이면서 서법이나 운필법을 꾸준히 탐구해 왔기 때문에 한문 번역 순서나 글자가 3분의 1만 남아있어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학자로서 틀린 것을 알고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바로 A4 용지 3장의 반론문을 썼죠."

이 교수는 서체 반론문을 가슴에 품고 다니며 다시 검토하고 또 검토한 후 2010년 9월 7일 '서법적 분석을 통한 증도가자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이어 2010년 9월 10일 중원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공개한 명(明), 선(善), 소(所), 평(平), 어(於), 보(菩), 아(我), 복(福), 자(子), 불(不), 법(法), 방(方) 등 증도가자 12자의 금속활자가 번각본 증도가에 찍힌 글자와 모두 다르다는 것을 한 자 한 자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교수의 이런 반론 제기가 도화선이 되어 MBC PD수첩, KBS 추적 60분 등 방송과 여러매체에서 의혹을 제기하게 되었고, 남 교수가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앞서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고 공개한 '증도가자'에 대한 진위논쟁은 뜨거워졌다.

당시 이 교수는 이와함께 남 교수가 보여준 활자는 금방 주조한 것처럼 너무 생생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활자 크기가 1cm정도인데 900년 동안 땅 속에 묻혔다고 가정했을 때 100년에 1mm가 부식됐다고 하더라도 형태 정도가 간신히 유지됐을 것이라며, 초등학생들도 대비해 보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글자인 '선(善)'과 '명(明)'을 예를 들어 서체의 다름을 제기했다.

<표1 참조>


"문화재청 의견 접수 못내 무거운 마음"

최근 문화재청이 4월 13일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를 열어 증도가자 진위여부를 결정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10여일 전에 기자와 연락이 닿은 이 교수는 "문화재청 의견 접수를 알고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밀려 참여하지 못한 것이 밀린 숙제처럼 못내 무겁고 미안하다"며 지난 3월 25일 추가 서체분석을 보내왔다.

이 교수는 2014년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 17쪽에 있는 '사람인(人)'을 선택해 설명했다. 주관연구기관인 경북대 산학협력단이 남명천증도가 번각본에서 추출한 '人자'는 총 72자인데, 육안으로 얼핏 보아서는 같은지 다른지 판별하기 어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72자중 같은 글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단언이다.

"연구진이 제시한 '人자'를 활자판에 고정하고 인쇄했을 때 72자와 같은 모양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조사한 활자 人의 끝 각도는 45도 위를 향하고 있으나 인본에서 추출한 72자의 끝은 각도가 'ㅡ'처럼 수평이기 때문 입니다."

이 교수는 "대조표 5행 7번째 人자와 8행 5번째 人자를 보면 각수들이 바늘끝처럼 가는 획도 잘 살려서 새겼음을 알 수 있다"한 "이를 근거로 볼 때 설사 각수가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위쪽으로 45도 향한 획을 수평이 되게 새기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표2 참조>


"바른 판결로 학식과 상식 갖춘 사회로"

이 교수는 자신은 학자적 양심으로 한자(漢字) 한 글자의 서체(書體)와 운필법(運筆法)을 활용해 증도가자를 가짜라고 주장한 것이라며 "때로는 단순한 지식 하나, 글자 하나가 진실을 말하는 준거가 될 수 있는 것이며, 또 때로는 단순한 상식이 치열한 학문적 시비를 가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논리적 사고, 즉 과학적 사고와 결론이 학자의 명예요, 생명이고 우리의 옛 학자들도 그렇게 했다"며 "옳지 않을 것을 맹종하는 것은 학자의 도리가 아니며, 옳은 말을 채택하는 것이 학자의 도리여서 증도가자의 진위논쟁에 관여하게 됐다"고 재차 밝히고, "아무쪼록 이번 사건이 진(眞), 정(正), 충(忠), 효(孝), 절(節), 의(義)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우리 선대 학자들의 기본정신을 되찾고, 그런 정신을 본받아 우리 모두가 학식과 상식을 갖춘 선진국민이 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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