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부장

자료사진 / 뉴시스

31일 새벽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와 앞으로 전개될 재판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종식(終熄)을 알리는 마지막 장면이 돼야 겠다는 생각을 한 이들이 많을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 혐의는 뇌물수수 인데, 12, 12 군부 쿠테타 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집권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뇌물) 사건 당시 법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30여년 이후에도 반복됐으니 말이다. 게다가 삼성그룹을 비롯해 대기업 총수들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거액을 바친 정경유착 행태 역시 말그대로 적폐(積弊)이다.

검찰이 1995년 12월 5일 구속기소해 1심 선고공판 결과가 나왔던 1996년 8월 26일까지 진행된 전·노 전대통령 재판에서도 재벌들이 바친 돈이 과연 '성금이냐, 뇌물이냐'는 공방이 치열했다. 검찰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 대가로 298억원(약속액 433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있는 삼성그룹은 당시에도 빠지지 않았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계열사 사장 이종기를 청와대에 보내 노태우에게 4회에 걸쳐 모두 100억원을 제공했다. 석유화학사업 진출, 차세대 전투기 사업, 경부고속철도 건설공사 등 사업을 수주했던 이 회장은 1990년 12월부터 2년간 한차례에 20억원~30억원씩 바쳤다.

재판에서는 대통령의 직무관련성도 쟁점이었다. 노태우가 이건희 회장을 협박해서 공갈로 돈을 받은 것인지 여부도 마찬가지 였다. 삼성은 당시에도 '피해금품'이라고 변론 했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지난 1월 진행된 영장심사에서 '뇌물공여자'가 아니라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면 영장이 기각됐어야 맞다.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재판부도 마찬가지 였다. 당시 재판부는 '공갈 피해'를 본 게 아니라 경쟁기업보다 우대 또는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를 받으려는 의도로 돈을 제공한 것으로 봤다.

직무관련성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은 '대가성이 불명확 하다'며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기업(삼성)과 대통령의 직무행위는 포괄적 대가 관계에 있다고 판단했다. 신동아 건설의 최원석과 대우의 김우중 등 사건에 연루됐던 대기업 총수들의 돈에 대한 법적 판단도 마찬가지 였다.

다만 전두환·노태우와 박근혜가 달랐던 것이 있다면 돈을 관리하는 방식 이었다. 전두환·노태우의 경우 경호실 경리과장 등 부하들을 통해 가명계좌에 분산예치하거나, 자금세탁 과정을 거쳐 양도성예금증서, 무기명 채권 등을 구입했다. 기업체 역시 계열사를 통해 변칙적 회계수법을 동원해 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출처 은폐를 시도했다. 만약 박 전 대통령 선처를 받는다면 이런 부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부장

박 전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동생 박지만 EG 회장조차 멀리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친인척 관리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특검과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실상은 봉건시대 구중궁궐(九重宮闕) 못지않게 음습했다. 자유한국당 유력 대선 주자 홍준표 경남지사의 표현처럼 '허접한 여자 최순실'에게 대통령이 휘둘렸다. 오는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개헌이 화두가 될 것이다. '중앙-지방'의 확실한 분권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적폐청산이 핵심과제가 돼야할 것 같다. 이를 못마땅해 할 수도 있는 '새로운 권력'이 확실한 의지를 갖도록 설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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