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이라 불리는 청년 지미에겐 현실이 ''시궁창''이었다. 쇠락한 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흑인 거주지역과 백인 상류층 주택가를 가르는 8마일가. 버려진 트레일러서 보험금을 노리고 지미의 고교동창과 동거하는 젊은 엄마는 철없던 시절 자신의 배를 빌려 태어난 지미를 원망한다. 그런 엄마도, 사랑하는 어린 동생도, 또 임신했다는 애인도 그에겐 너무 무거운 짐이다.
 ''백인 쓰레기''로서의 삶도 버겁다. 랩 없인 돌 것만 같은 현실에서 그의 파리한 피부색은 차라리 저주였다. 네 동네로 꺼지라는 야유와 욕설 속에서도 래퍼로 뜨고 싶다는 열망은 비등점을 향해 달려가지만, 무대는 두렵고도 무섭다. 토악질을 할 만큼.
 커티스 핸슨의 ''8마일''은, 숱한 성장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날갯죽지 부러진 천재''를 스크린에 불러세운다. ''굿 윌 헌팅''에서 윌이 수학천재였다면 지미는 천재래퍼다. 그저 시궁창에서 살고 싶을 뿐이어도, 어김없이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는 천재성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 하지만 부러진 날갯죽지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요구된다. 지지자들의 헌신적인 후원과 격려, 그리고 천재 자신의 각성이 그것. ''8마일''에서 지미의 각성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비웃음 속에 퇴각해야했던 첫번째 랩 배틀 이후 일주일이다.
 그리고 그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은 영화 ''8마일''을 ''록키''류의 아메리칸 드림 성공담과 구별시킨다. ''8마일''은 당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성별과 빈부, 인종의 구별마저 초월해버린 미국의 상징물이라는 에미넴(Eminem)의 존재 만으로도 이미 아메리칸 드림을 극적으로 역설하는 영화. 게다가 그의 실제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자전적 스토리임에야. 하지만 현명하게도 커티스 핸슨감독은 두번째 랩 배틀에서의 승리 이후 지미를 다시 공장으로 돌려보냄으로써, 그의 투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이야기한다. 하긴 시궁창을 벗어나 꿈을 잡으려는 우리네 삶의 투쟁 역시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지 않던가.
 여러 번 겹쳐졌다 펼쳐질 삶의 굴곡들을 긴 호흡으로 예견하는 성장영화 ''8마일''은 또한 아주 역동적이면서 흥미로운 음악영화다. 특히 못 배우고 천박한 흑인들의 상스럽고 유해한 소음 정도로만 랩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훌륭한 교육자료가 될 수 있을 만한 영상 보고서이기도 하다.
 범죄와 실업, 태만과 자포자기의 슬럼 8마일가는 미국 사회 주류로 승인받지 못한 이들을 수용하는 일종의 게토로 자리매김된다. 흑인이건 지미같은 백인쓰레기이건 이 게토의 주민들에게 랩은 그들만의 해방언어이자 무기이다. 고작 30분 주어지는 점심시간, 노동자들은 공장주의 비인간적 행위를 랩으로 고발하고, 갈 곳 없는 청춘들은 랩으로 소통하고, 무리 지으며 그렇게 살아간다. 엄마의 악담과 공장관리자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프리월드 패거리들에게 얻어터지면서 지미가 아무런 응대도 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미 평상 언어는 그의 존재증명도, 그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도 될 수 없었던 것.
 그렇게 랩의 언어로 각성한 그들은 랩 배틀에서 진검승부를 겨룬다. 게토주민의 고통과 좌절, 울분과 희망이 랩의 용광로 속에서 끓다가 끓어 드디어 충돌하는 랩 배틀의 비상한 긴장감은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대목. 그러니 설혹 에미넴을 모른다고, 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레 주눅들 건 없다. 그저 그 열기에 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어깻짓에 동참하면 다음과 같은 환영문구를 만나게 될 것이니. "랩의 영토에 들어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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