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잘 받은 사과가 곱게 붉는다고 한다. 나무들도 좋은 햇살을 받고 살았을 때 단풍이 곱게 물든다는 것이다.
 얼마 전 사십 여 년 전의 학우들이 한마음으로 모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마음만은 옛날로 돌아갔다. 내장산의 단풍, 꽃보다 아름답기로 만인이 찾아가 앉기고 싶은 곳. 뒷북치고 장구 치며,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그 모습을 거두어 간 뒤였다. 아니 금년의 단풍은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았단다.
 내장산의 나무들도 궂은 세월의 삶의 모습인양 단풍이 곱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곱게 나이 들어 보이기도 했고 더러는 풍상에 절은 모습도 있어서 나무들과 우리는 어딘가 닮아 있었다. 가을의 옷차림을 벗어버린 나무들과 때늦은 계절에 찾아온 나그네들, 가슴속 어디인가 비어있다.
 삶의 인연으로 맺어있던 고리들은 하나둘 풀려나가고 해야 할 일의 의미들도 안개 속으로 꼬리를 감춘다. 코일 선처럼 엉켜있던 삶의 그 매듭들이 하나 하나 풀리면서 우리들은 나이 들어 있다.
 이제 모든 것이 안주보다는 제동이 풀린 채 가속이 붙고, 머리가 비워 지면서 마음도 비어간다. 이렇게 비어 가다가 정녕 텅 비게 될 때,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인가. 그러면 또 다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내장산은 말없이 태양을 거두어 가고 우리는 산을 떠나야했다. 차내의 친구들이 수런거렸다. 나는 친구들 앞에 릫내장산의 단풍릮 노래를 불렀다.
 산천도 수려해라 오곡도 풍성해라 / 흰 구름 쉬어 가고 새들이 노래하는 곳/ 호남평야 정읍에 아름다운 내장산에는 / 여승의 목탁소리가 내 마음 울렸기에 / 빨갛게 멍이 든 단풍, 그 상처에 멍이었드냐....
 술잔을 나누며 사십 여 년 전의 마음으로 유희했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내일 일 수 없는 도착에 대하여 두런거리고 있었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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