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소상공인] 22. 父子 운영 '성안길 구두수선집'

올해로 꼭 10년을 함께 일해온 청주 '성안길구두수선' 박옥환(62·사진 오른쪽), 승환(39)씨 부자가 파이팅을 하고 있다. 아들 승환씨는 청주지역 최연소 구두수선공이다.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아버지는 제 스승입니다."(박승환)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아들이 "구두닦는 우리 아버지가 존경스럽다"고 얘기하는 걸 보고 눈물 나더라고요."(박옥환)

청주시 성안길 롯데시네마 청주점 사거리에는 박옥환·승환씨 부자(父子)가 운영하는 구두수선집 '성안길 구두수선'이 있다. 1.5평 남짓의 작은 컨테이너가게이지만 39년간 한 자리를 지켜왔다.

박옥환·승환 부자가 1.5평 남짓 작은 가게에서 구두닦이 및 구두수선 작업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같이 일한지 올해 3월로 꼭 10년이 됐다. /김용수

아버지 박옥환(62)씨는 자신의 일을 이어받은 아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아들이 남의 구두에 묻은 흙먼지 닦고 있는 것 보면 안쓰러웠는데 대를 잇겠다고 하니까 기특했어요. 지금은 아들을 찾는 단골이 더 많아요."(박옥환)

아들 승환(39)씨는 올해로 구두수선공이 된지 꼭 10년이 됐다. 10년만에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3월부터 청주시 용암동 하나로클럽 정문 입구에서 구두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3월 2일이 딱 10년 된 날이에요. 아버지가 용암동에서 5년간 자리를 잡아주셨고, 한달전부터 제가 넘겨받아 하고 있어요."(박승환)

승환씨는 청주지역 '최연소' 구두수선공이다. 군대 전역후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으로 6년간 근무하다가 이 일은 선택했다.

"쉬는 날, 집에 오면 아버지가 늘 손목에 아대 하고 파스를 붙이고 계셨어요. 직업병인거죠. 속상했죠. 아버지 일 도와드리러 잠깐 가게에 가면 가게에 사람들이 엄청 많은 거에요. 아버지 혼자 일하게 해드리는 게 마음이 아파서 돕겠다고 했죠."(박승환)

39년째 구두를 닦고 수선하며 어렵게 번 돈을 모아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박옥환 사장이 구두를 닦고 있다./김용수

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옛날에는 구두닦이 라고 하면 천하게 봤거든요. 외아들인데다가 당시 아들이 결혼도 안해서 누가 시집오겠나 걱정이 앞섰죠."(박옥환)

하지만 아들과 같이 일하면서 마음이 놓였단다. 지금은 아버지의 오랜 경력과 아들의 최신 트렌드 정보가 만나 신구(新舊)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아버지 직업을 적는 란에 제 직업을 사실대로 얘기한 거에요. 구두닦는다고 하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얘기했었거든요.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말하는 아들이 기특했어요."(박옥환)

승환씨는 7살과 6살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그는 자녀들에게도 자신의 직업에 부끄럼이 없다.

"아이들에게는 "아빠직업은 '구두 고치는 사람이야"이라고 얘기해요. 집안에 고장난 것들도 뭐든 뚝딱뚝딱 다 고치니까 아이들이 제게 '뚝딱이'라고 해요."(박승환)

손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손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하다. 승환씨는 3년차쯤, 일하다가 1.5㎝ 타카못이 왼쪽 엄지손톱에 막혀 제거수술을 받기도 했다.

"못이 뼈에까지 박혀서 아파 죽는 줄 알았었어요. 하지만 손님에게는 내색하면 안되니까 일단 작업 다 해서 보내드리고 나서, 바로 병원 가서 수술한 적이 있어요."

39년째 구두를 닦고 수선하며 어렵게 번 돈을 모아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박옥환 사장이 구두를 닦고 있다./김용수

박옥환 사장이 이 일을 시작한 건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승환씨가 태어나지 20일 전, 길을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발 장애(장애 4급)를 얻었다. 당시 구두수선일을 하던 친구가 이 일을 추천해줘서 목발을 잡고 다니면서 일을 배웠다.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12월 31일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20일 뒤에 아들이 태어났어요. 이후 퇴원하고 바로 일을 배웠죠. 아들이 올해 서른아홉이니까 이 일 시작한지가 39년이 됐네."(박옥환)

오랜 경력 덕에 박 사장은 구두만 딱 보면 브랜드인지, 중국산인지, 명품인지 한눈에 알 수 있고, 가격대도 알아맞히는 구두전문가가 됐다.

"좋은 신발이 튼튼하고 오래 신기는 해요. 딱 보면 다르죠. 이시종 (충북)지사님도 구두 닦고 수선하시러 몇번 오셨었는데 구두 보면 서민스타일이세요. 이원종 전 지사님도 그렇고…."

구두수선일은 예전보다 일감이 많이 줄었다. 저렴한 중국산이 많이 들어왔고, 새 것을 선호하는 소비풍조 때문이다.

"요즘은 하루에 10만원 벌기가 어려워요. 중국산 신발이 많이 들어오니까 수선해 신느니 새 신발 사서 쓰는 사람들이 많아요."(박옥환)

"기성화에 중국산이 많이 나오면서 젊은 사람들은 조금만 고장나거나 유행 지나면 신발을 버리더라고요.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고쳐서 쓰면 다 새 것 같은데…. 경제도 어려운데 신발을 아껴서 신고, 고쳐서 신으면 좋겠어요."(박승환)

1.5평 남짓의 좁은 가게 내부 벽면에는 봉사활동 모습들이 소개된 신문 등이 스크랩돼 있다. 박옥환 사장은 1980년 결성된 '일송회'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37년동안 매년 어려운 이웃 돕기에 앞장서왔다. /김용수

그러면서도 직업으로서의 전망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큰 돈은 못 벌지만, 구두수선은 손으로 하는 거니까, 기계로 할 수도 없고, 남이 대신할 수도 없으니까 앞으로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요."(박옥환)

요즘은 명품구두 수선 수요가 늘고 있다. 청주에선 '성안길 구두수선' 외엔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명품구두 수선은 작업도 까다롭고 자칫 실수하면 큰 돈을 물어줘야 하는 위험부담이 있어요. 하지만 '명품구두 수선' 수요가 늘고 있어서 인터넷 보면서 공부하고 신경쓰고 있어요."(박승환)

박옥환 사장이 남달리 챙기는 것이 있다. 바로 봉사활동. 청주지역 구두수선공 모임인 '일송회' 회장을 맡았었던 그는 1980년 '일송회' 결성 이후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모든 회원이 한자리에 모여 길거리 구두닦이봉사를 통해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 돕기에 쾌척해왔다. 매년 봄~여름에는 길거리 구두닦이 봉사, 겨울에는 연탄배달봉사를 해왔다.

"주변에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아요. 봉사 라는 게 돈이 있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봉사를 할수록 더 어려운 사람들을 더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요."(박옥환)

올해에는 당초 5월 길거리 봉사를 계획했는데 대통령선거 일정으로 가을로 연기했다.

박옥환·승환 부자가 1.5평 남짓 작은 가게에서 구두닦이 및 구두수선 작업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같이 일한지 올해 3월로 꼭 10년이 됐다. /김용수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부자, 앞으로의 계획은 어떨까.

"'명품 구두수선공'이 되고 싶어요. 명품을 수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명품'처럼 잘 수선해서 아버지 못지 않은 '명품' 구두수선공이 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박승환)

"올해 예순 둘인데 건강이 따를 때까지 해야죠. 단골들을 위해 70대까지는 할 거에요."(박옥환)

박옥환·승환 부자는 그들이 닦는 반짝반짝 구두처럼 세상도 반짝반짝 빛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청주시 성안길 롯데시네마 사거리에 위치한 '성안길 구두수선'은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저녁 8시반에 문을 닫는다. 매달 첫째주 일요일에만 쉰다. /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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